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세상엔 별스런 직업도 다 있다. 그러다보니 결혼식 주례를 전업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한동안 결혼식 주례가 직업이었다. 직장에 나갈 때는 부업이었으나 직장에서 퇴임하고나니 부업이 주업이 되었다. 서울 신촌 로터리의 한 예식장의 전속 주례로 토요일과 일요일엔 여러 건의 주례를 서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의정부와 포천 등 서울 근교의 예식장에도 출장 주례를 맡기도 했다.

결혼식장을 예약할 때는 대개가 주례는 정해지지 않는다. 아직도 결혼 날짜가 최소한 몇 달은 남았으니 우선 예식장 예약을 하고 그 다음에 주례를 구하기 마련이다.

예식장에 손님이 예약을 하러오면 "주례는 정하셨습니까?"하고 예약 담당자가 묻는다. "아직 주례 선생님은 정하지 않았는데요"하면, 담당자는 "예, 주례 선생님도 번거롭게 개인적으로 구하지 마시고 저의 예식장에서 아주 고명하신 분으로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약간의 사례비만 선불로 예약을 하시죠."

이렇게 해서 주례까지 예식장에 일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주례를 정하기는 정말 번거로운 일이다. 옛날에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자기 PR로 주례를 많이 맡아 주었다. 그러나 정치인의 이런 활동이 제약되다 보니 마땅한 사람을 찾는 게 귀찮고, 사례를 하고, 신혼 여행 후 신랑 신부가 인사를 가고 하는 일들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결혼식장의 사례비는 대개 10만원이다. 이 예약금 10만원 중에 주례에게 5∼7만원을 나누어주고 일부를 예식장 수입으로 한다. 내가 전속으로 있던 신촌의 예식장은 1건에 7만원을 나에게 주었다. 봄이나 가을 피크 때는 토·일요일에 여러 건이 이어져 그 수입이 꽤 짭짤하다. 거기다 점심은 뷔페로 잘 얻어먹고, 혼자만 먹는 게 아니고 가끔 친구들 불러 공짜 점심도 먹인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여러 건이 예약되면 중간 빈 시간에는 인근의 극장에 가서 시간을 보내거나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다 시간을 맞춘다.

@ADTOP@
사기결혼에 이벤트 결혼까지

주례를 많이 하다보니 사기 결혼의 주례까지 한 일이 있다. 친구의 부탁으로 고아 출신 노처녀라기에 주례를 맡았는데,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 이 유부녀가 주점을 하다 빚이 늘어나자 빚을 갚기 위해 돈 있는 손님을 꾀어 사기 결혼을 하다 후일에 들통이 나버렸다.

결혼 당일 식장에 손님도 적고 무언가 좀 이상한 예감이 들더니 얼마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사기 결혼의 주례를 섰기에 담당 경찰이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장난으로 하는 '이벤트 결혼식'의 주례도 섰다. 자영업을 하는 노총각이 남의 결혼식에 축의금만 축나니 투자한 축의금을 받아먹으려 꾀를 낸 가짜 결혼식이었다. 술집 노처녀를 꾀어 청첩장까지 내고 물 좋은 강가 원두막에서 풍물놀이를 하며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축의금만 받아 챙기고 그날 행사로 모든 게 끝났다. 그 친구는 지금도 노총각으로 경기도 어느 산골에 혼자 살고 있다.

언젠가는 엉뚱한 방에서 한참 주례 서다보니 진짜 주례가 늦게 나타나 수선을 피운 적도 있다. 주례사까지 하다가 중도에 내려와 내 방을 찾아가니 난리가 났다. 할 수 없이 오는 길에 길이 막혀 좀 늦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백배 사죄를 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각에 아래 위층의 두 군데 주례를 선 일도 있다. 한 쪽엔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한 5분 빨리 시작하여, 10여 분만에 끝내고…. 한쪽은 7∼8분 늦게 주례를 하고 오는 중에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다고 고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내 고향인 안면도에 와서 살다보니 서울의 전속 주례는 모두 끊겼다. 그래서 전업 주례는 아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부탁으로 20∼30만원 짜리 사례비를 받는 주례를 맡아 서울까지 간다. 서울 사는 아들·딸네 다니러 갈겸 겸사겸사 다닌다.

요즘은 이곳 고향에서도 자주 주례를 맡는다. 아주 주례를 잘 선다는 소문도 있어 주문이 늘고 있다. 한 때 그걸로 밥 먹고 산 프로 주례, 전업 주례였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나의 주례사는 원고를 외운 듯 매끈하며 간명하다. 나는 다행히 마인드 맵(mind-map)이라는 새로운 필기법을 익혔기에 메모지 한 장에 적은 주례사를 흘깃흘깃 보면서 줄줄이 이어대는 걸 하객들은 알지 못한다.

@ADTOP_1@
나는 시간이 날 때면 남의 주례사도 유심히 듣는다. 어눌한 말솜씨에 "시대가 변했으니 인터넷을 해야한다…"는 둥, 엉뚱한 이야기를 주장하는 웃기는 주례도 보았다.

'넋 나간 사람이지 지금 주례 앞에 서 있는 신혼 부부에게 먹힐 말을' 해야지.'

내가 듣기에는 노망들린 이상한 주례사도 참 많은 것 같다. 장황한 주례사는 신랑신부에게나 하객들에게나 들어주기 지겨운 말씀이다. 빨리 끝내 주는 게 신랑신부를 돕는 일이다.

이번 일요일에도 친구 부탁으로 읍내 예식장에 주례를 선다. 훌륭한 주례사를 미리 마인드 맵 해놔야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