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정으로 인한 밤샘작업을 끝내고 원고를 넘기니, 어느새 작업실에는 오후가 찾아와 있었다. 찌뿌드드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후배를 꼬셔서 시원한 바람이나 마시러 가기로 했다. 아무 준비 없이 디지털 카메라 하나만 들고는 무작정 나섰다.
대구 계명대학교 정문을 벗어나 성주 방면으로 방향을 잡으면, 2분이 채 안되어 강창교를 만난다. 작업실에서 나온 지 5분만에 우리는 강창교를 건너고 있었다. 이 다리는 금호강을 건너는 마지막 다리로 이를 기점으로 해서 대구 달서구와 달성군이 갈라진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나는 신호에서 바로 좌회전. 그리고 3분만 더 가면 그곳에는 낙동강이 있다. 잉어찜과 메기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원래는 이곳에서 낙동강으로 내려가 강바람이나 쐬다가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강둑 옆으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오솔길이 있어서 내친김에 조금 더 그 길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옆으로는 길게 논과 밭이 형성되어 있고, 부지런한 농부들은 비닐 하우스 속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산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빽빽한 아파트단지가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음을 이야기 해 줄 뿐, 이 길은 전형적인 농촌의 농로 그것이었다.
길 좌우로는 생각보다 넓은 밭과 논이 있었다. 그리고 1월 초입에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푸른색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자세히 보았더니 밀이었다. 잔디구장으로 착각할 정도의 넓은 들에 파랗게 밀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차에서 내려서 강바람과 푸른색의 향취에 취하기로 했다.
이 넓은 들이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러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삼각주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잠시 차에서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좌측으로는 금호강이 우측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기심에 혹 이 길을 끝까지 가보면 두 강의 만남을 지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는 길은 계속 밀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강 하나만 끼고 있어도 기름진 평야가 되는데, 이곳은 경상도를 대표하는 두 개의 강이 끊임없이 자양분을 공급하니, 저 밀이 얼마나 기름질까 싶다. 아마 올 6월이면 밀 익는 냄새가 수 백km를 달려온 금호강물과 낙동강물을 맞이할 것이다.
밀밭에는 마치 바둑알을 놓아 둔 것처럼 까만 생명체들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자세히 보니, 청둥오리를 비롯한 이름도 알 수 없는 철새들이 빼곡이 밀밭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다. 괜스레 장난기가 발동하여 돌을 하나 던져보자, 푸드덕 하고 날아오르는 폼이 유명한 철새 도래지인 우포늪이 부럽지 않다. 좋은 카메라가 없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그렇게 밀 익는 냄새를 상상하면서 약 15분 정도 차를 달리자, 금호강과 낙동강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2m가 채 안 되는 넓이의 길을 사이에 두고 금호강과 낙동강이 갈리고 있으며, 그 중간으로 우리의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길이 막히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니, 2m의 길을 사이에 두었던 두 강이 잠시 갈라지는가 싶더니, 내 눈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은 만나고 있었는데, 이제야 내가 그것을 보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이곳이 바로 116km를 달려온 금호강이 남해를 향해 열심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낙동강과 만나, 낙동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곳이었다.
이곳이 철새 도래지라는 사실은 차가 더 이상 못 들어가도록 막아 놓은 문에 붙어 있는 낡디 낡은 팻말을 보고 알았다. 대구 도심에서 불과 5분 정도 벗어난 곳에서 나 몰래, 그리고 대구 사람들 몰래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철새와 밀밭이 두 강의 만남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대구에서 성주로 가다보면, 대구 계명대학교가 나온다. 계명대학교 지나자마자 큰 다리를 하나 건너면 바로 신호를 만나는 데 그곳에서 좌회전. 그리고 약 1-2분쯤 달리면 강으로 내려가는 비포장길을 만날 수있다. 그 길을 따라서 계속 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