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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0일은 내 결혼기념일이다. 그리고 올해는 17주년인가…. 마흔의 나이로 결혼해서 17년을 살았으니 내가 벌써 오십대 후반인가…. 17년 전 서른 네 살이었던 아내도 어느덧 오십 줄에 접어들었나…. 하여간 우리 부부는 또 한번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아침 7시경 동네의 가로등과 방범등들을 끄러 밖에 나가니 하늘이 맑았다. 기온도 온화하고 상쾌한 기분이었다. 17년 전의 오늘과 똑같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가끔 땅바닥에 뒹굴기도 하면서 마치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는 바깥 고양이가 내 앞을 바짝 가로지르며 걸음을 방해해도 조금도 밉지 않았다.

며칠 전 친목회 모임이 있었던 음식점에서 생선 토막들을 한 보따리 거둬 왔던 것을 냄비에 더 많이 넣고 데워 우선 바깥 고양이들에게 푸짐하게 밥을 주었다.

방학 때라 다소 늦잠을 잔 아내가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다가가서 볼에 살짝 입을 맞춰 주었다.

"왜 그래요, 당신? 아침부터."
섭섭하게도 아내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둔감허긴…. 오늘이 오늘 아녀."
"오늘이 오늘이라뇨…?"
그러다가 아내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는 우리 방의 이부자리부터 갠 다음 어머니 방으로 갔다. 어머니는 촛불 앞에서 기도를 하고 계시는데, 아들녀석은 아직 한밤중이었다. 나는 아들녀석을 깨웠다.

"한결아,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나야 혀. 오늘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여. 그러니께 오늘 일랑 아침 안 먹는다는 소릴 허지 말구, 같이 아침 먹어야 혀. 알었냐?"
아들녀석은 눈을 감고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은 할머니가 밥상 앞에서 널 자꾸 불르시지 않도룩 허여. 알었지? 오늘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란 말여."
나는 재차 아들녀석의 머리맡에 다짐을 박았다.

다음 순간 아들녀석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늘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으응, 그렇구나!"
그러더니 녀석은 곧장 욕실로 갔다.

나는 녀석이 고맙고 기특해지는 느낌을 삼키며 책 창고나 다름없는 골방으로 들어갔다. 후미진 곳에 감춰두었던 물건을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은 며칠 전에 보석 가게에 가서 구입한 자수정 목걸이가 담긴 패물 곽이었다.

올해는 아내가 지난해와 지지난해처럼 결혼기념일 무렵에 연수를 가지 않게 된 것을 알게 된 나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결혼기념일 아침에 선물을 하나 할 생각을 했다. 내 통장에는 <오마이뉴스>와 <충남예술> 등에서 받은 고료도 있었다.

내가 올해 처음으로 아내에게 결혼기념일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약간의 곡절이 있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아내 입장에서는 어쩌면 '옆구리 찔러 절 받기'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 곡절을 고백하자면 이렇다.

결혼 전에 사귀었던 부산의 한 여성 작가에게 나는 지난해 12월 초 벼루를 선물했다. 그녀가 충남도 지정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김진한씨의 '남포벼루'에 대해 관심을 표했기 때문이었다. 18년 전에 헤어진 후로 한 번도 만나지는 않으면서도 같은 작가로서 서로 연락을 하며 살기에 생겨난 일이었다.

그녀는 손바닥만한 벼루를 원했는데, 내가 김진한씨에게 전화로 문의를 하니 15만 원짜리와 30만 원짜리가 있다며, "지 선생님이 사용을 하려면 30만 원짜리는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며 김씨는 고맙게도 20만원만 입금시켜 달라는 말과 함께 벼루를 택배로 보냈다. 생각보다 그 벼루의 크기는 한마디로 거창했다. 나는 그것을 부산의 그 여성 작가에게 택배로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성 작가가 자신의 인터넷 카페에 이 사실을 공개한 것을 아내가 알게 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그 작가는 손바닥만한 벼루인 줄 알았는데, 컴퓨터 키보드보다 더 큰 벼루를 산물받았으니, 놀랍고 고맙고 미안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마음에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받아들인 것은 달랐다. 왜냐하면 아내는 부산의 그 여성 작가가 내가 결혼 전에 사귀었던 사람이고, 나보다 10년 연하인데 아직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으며, 가끔 서로 안부를 전하는 사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러면서도 평소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다가, 자신도 모르게 내가 그녀에게 벼루를 선물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심사가 편할 리 없음은 당연하다.

아내는 '왜 그 일을 자신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섭섭함을 표했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살면서 내게 선물 한가지라도 정식으로 해본 일이 있느냐고 아내는 따졌다. 우리 부부는 서로 선물 같은 것에 구애받지 말고 그 돈을 아껴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한푼이라도 더 쓰자고 했던 내 말도 다 '눈 가리고 야옹' 하는 식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며 아내는 1999년에 내가 스스로 했던 '약속'을 기억할 수 있느냐고 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1999년이라면 내가 '충청남도문화상'을 받은 해였다. 11월의 일이었다. 상금 500만원의 일부를 남겨 내년 결혼기념일에는 아내에게 꼭 선물 한가지를 하겠다는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제 '공적상'으로는 지방의 최고상까지 받았으니 앞으로는 권위 있는 '작품상'도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작품 생산에 주력하여 좋은 성과를 얻으면 아내에게 꼭 의미 있는 선물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던 것도 같은데, 그것은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었다.

1999년에 아내에게 스스로 했다는 그 약속조차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아내는 더욱 섭섭해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약속을 기억조차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다. 내가 4년 전에 무슨 약속을 했는지 전혀 기억조차 못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이제까지 17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선물이라는 걸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증을 잘못서 매월 200만원씩 빚잔치를 하며 산 눈물겹던 수년 세월이 지난 지도 벌써 몇 년이건만….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가족 외식을 한 일은 여러 번이지만, 정작 아내를 위한 선물을 한 기억이 없었다.

나는 정말 미안한 마음을 안고 보석 가게로 걸음을 했다. 내 아내가 비록 얼굴도 몸매도 썩 예쁜 사람은 아니지만(이 글을 보면 아내가 필경 '이런 말까지 꼭 해야 하겠수?'하겠지만), 그 착한 심성만큼은 세상에 다시없을 사람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내 마누라이고 내 반쪽이니 그저 평생토록 아껴주고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자수정 반지를 사고 싶었다. 내 애송시들 중의 하나인 홍윤숙님의 「장식론」에 나오는 자수정 반지가 아내 나이에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값을 알아보니 내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수정 반지는 다음으로 미루고 20만 원짜리 자수정 목걸이를 선택했다.

아침밥상 앞에서 우리 가족은 우선 '아침기도'를 했다. 그리고 특별히 '가정을 위한 기도'와 '부부의 기도'를 바쳤다. 그런 다음 나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줄 결혼기념일 선물을 준비했음을 말하고 주머니에서 선물 곽을 꺼내들었다. 그것을 풀고 여는데 아들녀석이 재촉을 했다.

드디어 자수정 목걸이를 꺼내 들고 아내의 목에 걸어주니, 아내는 함빡 웃음을 짓고, 어머니와 아들녀석이 손뼉을 쳤다. 그러며 어머니는 "우리 딸(손녀)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하시며 아쉬움을 표했다. 딸아이가 지금쯤 천안의 원룸에서 어찌하고 있을지(휴대폰이 고장나서 알아볼 수도 없고) 궁금하긴 하지만,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아침 식사였다.

"마누라헌티 미안헌 소리지먼, 생전 처음 마누라헌티 결혼기념일 선물을 허구 보니께 내가 무슨 큰 일을 헌 것만 같구 기분이 아주 삼삼허네."
밥을 먹으며 내가 이런 너스레를 하자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부부란 나이 먹어갈수록 서루 더 잘 허구 살어야 혀."

토요일은 우리 부부가 60리 거리인 해미성지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날이다. 내 승합차 가득 20여 통의 물을 길어다가 이웃들에게 나누어 드리는 일도 벌써 10년을 헤아리고 있다. 오후에 다시 해미에 가서 물을 길어오다가 서산의 유명 메이커 제화점에 들러 어머니의 13만 원짜리 겨울구두를 한 켤레 샀다.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어머니께도 선물을 하면 더 뜻이 있을 거라고, 아내가 먼저 생각한 일이었다.

저녁에는 동생 가족을 불러 두 형제 가족이 외식을 했다. 무려 '2년'에 걸쳐 계속해 왔던 내 이(齒) 치료가 끝난 날이기도 했고, 간호사가 얘기한 대로 18만 원을 준비해 갔더니 원장님 지시라며 15만 원만 받아서 3만 원이 남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부부가 함께 욕실로 들어가서 모처럼 만에 다시 서로 발을 씻어주는 행사를 가졌다. 그런 다음 잠자리에 들어서는 대뜸 17년 전 신혼 첫날밤의 그 시간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깊고 푸른 밤의 향연 속으로 정말 힘차게….

덧붙이는 글 | *우리 부부가 결혼기념일 아침에 하느님께 바친 천주교의 '부부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부부의 기도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혼인성사로 저희를 맺어주시고
보살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이제 저희가 혼인 서약을 되새기며 청하오니
저희 부부가 그 서약을 따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살 때나 못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소서.
또 청하오니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는 저희 부부의 삶이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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