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독재의 암울한 그림자가 통일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을 옥죄고 있던 1989년, 문익환(1918~94) 목사가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제목의 시를 연초에 발표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저 '시'로만 생각을 했을 뿐, 그것이 문 목사의 새해 결심이었음을 미처 읽어내지 못했다.
하긴 전두환을 닮았다는 이유로 텔레비전 출연이 금지됐었던 어느 연기자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생생하던 그 시절이었으니 어느 누가 감히 그런 '불경스런 생각'을 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두 달여 뒤인 3월 25일 문 목사는 유원호·정경모씨와 함께 평양 땅을 밟는다.
통일운동의 커다란 발자취를 남겨두고 우리들 곁을 떠나간 문익환 목사에 대한 10주기 추모 행사가 15일 부산 통일연대 강의실과 동보서적 4층 동보문화센터에서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기일인 18일 이전에 미리 준비된 자리라 그렇겠다는 생각을 했다.
통일연대 강의실에서는 '2004년 통일 운동의 전망과 우리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로 나선 정대연 통일연대 정책집행위원장은 " 올해는 단순히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을 반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민족성과 민족 공조 정신을 강화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저녁 7시 반부터 동보서적 문화센타에서 열린 문익환 목사 평전 저자와의 대화 시간은 일반인에게 문 목사에 대해 개괄적인 이해를 돕기 충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노 시민은 "문 목사가 살아있을 때는 통일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목숨을 내놓아야 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유로운 여건 속에서 오히려 그 때만큼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안타깝다"며 탄식하기도 했다.
강사로 나선 김형수 시인(문익환 목사 평전 출판 책임자)은 "20세기를 뒤돌아보면 수난과 시련, 아픔만이 남는 것 같다"며 "이것만 기록하면 피동태적인 역사가 될 것 아닌가? 그 가운데 문익환 목사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고 미소가 번진다. 어떤 수난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보관하셨던 문 목사를 창구로 해서 20세기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평전 집필 의도를 밝히기도 하였다.
강연장 한 켠에는 문 목사 관련 사진전과 생전에 문 목사가 쓴 시들이 전시되어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문 목사를 회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전략)
가시 철조망을 면류관처럼 쓰고 냉전의 채찍에 맞아
피철철 흘리며 참혹한 시대의 언덕을 넘어가신 분
그 분은 지금 어느 땅 어느 하늘아래 계시는가
(후략)
시인 도종환 [철조망 위를 걸어오신 예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