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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악동에 위치한 우리밀 과자점. 정성스럽게 과자를 만들고 있다
ⓒ 김진석
어머니 세 명이 모여 100% 우리 밀로 만든 우리 밀 과자점이 서울에서 최초로 문을 열었다. 여성의 자활을 돕는 '아낙과 사람들'과 세 여성 가장이 직접 투자해 창업한 '아낙 우리밀 과자점'은 여성 가장들의 자립을 위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해 12월 3일 서울 무악동에서 둥지를 튼 아낙 우리밀 과자점은 '무공해·무농약·무색소·무방부제'를 지향하며 일반 과자와 다른 틈새 시장을 공략한다.

'아낙과 사람들'은 어떤 곳?

99년 만들어져 현재 400여 여성이 활동하는 '아낙과 사람들' 은 여성 가장의 자활을 돕는 비영리 단체다. 그간 아낙과 사람들은 '출장요리뷔페' 와 '제과제빵'으로 사업팀을 구성해 여성 및 각종 사회 단체의 행사에 참여하며 자활 의지를 다졌다.

이 밖에 저소득 지역주민들의 자활능력배양 양성지원, 소년소녀가장 복지지원, 저소득층 청소년(비행청소년 포함)복지지원, 도시 빈민층의 생산공동체 결성지원 등 다양한 복지 활동을 펼쳤다. '아낙 우리밀' 과자점은 '아낙과 사람들'과 과자점을 운영할 어머니 세 분이 직접 출자해 처음으로 낸 점포다. / 김은성
이 과자는 아토피, 소화 불량, 특이체질 등으로 일반 음식을 못 먹는 유아들에게 먹거리에 대한 행복한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탄생했다.

우리 밀과 함께 유정란, 야생 꽃과 풀가루, 참깨 등 몸에 좋은 토종 재료를 사용해 우리 먹거리 살리기 운동까지 겸하느라 어머니들의 얼굴엔 건강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사오정'을 넘어 '삼팔선'과 '이태백'이 난무하는 요즘 이들 세 어머니는 '스스로 일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다'는 보람에 또 한번 웃는다.

"아시잖아요? 변호사·의사·공무원 등 소수 특별한 전문직 외 여성이 한국에서 4대 보험 다 되는 안정적이고 노후 보장된 일자리를 얻는 게 어디 쉬운가요? 하물며 집안에서 살림만 하다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중년의 나이에 여성 가장이 되면 상황은 말할 것도 없죠. 벌써 40대에 들어서면 남녀 불문하고 있는 사람도 나가라고 하는 판에 과연 어디서 누가 우리를 쓰려고 하겠어요?"

▲ 버터와 설탕을 제외한 모든 재료는 순수한 우리 것을 사용한다
ⓒ 김진석
'토종 음식에 미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 가장 최혜린(46)씨의 말이다. 같이 일하는 박 마리아(54)와 박 크리스티나(51)씨 또한 "우리 나이에 일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보람이다"고 입을 모았다.

오늘은 특별히 일하는 식구가 더 늘었다. 최씨의 외동 아들이자 랩퍼인 조성근(21)군과 자원 봉사를 하는 '왕언니' 이연주(66)씨가 일의 즐거움을 보탰다.

어머니들은 '말로 막 어쩌고 저쩌고 하는 노래(?)'를 하는 조군이 최씨를 돕는 모습에 자신의 아들인 양 기특해 하고 이제 막 세 번밖에 얼굴을 보지 못한 이씨와도 친언니에게 하듯 격없는 대화를 나눈다.

"젊을 때 나도 똑같이 애 키우느라 고생해서 그 마음을 잘 알아요. 게다가 요즘은 혼자 벌어 가정을 꾸리는 게 어려운 시대인데. 고학력이 아닌 그것도 기혼 여성이 홀로 가장 역할을 하는 건 쉽지않죠. 내 나이에 집에 있으면 오히려 몸만 아파요. 여기 나와 좋은 뜻도 같이 나누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하는 게 더 건강해져요."

할머니가 아닌 왕언니로 불리는 게 재미있다는 이씨. 그는 우연히 KBS에서 30초 가량 보도된 과자점 뉴스를 보고 직접 방송국에 문의해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일하는 것보다도 취재에 응하는 게 더 어렵다며 극구 말을 아끼던 이씨였지만 경제 불황을 말하는 그의 눈빛엔 근심이 역력했다.

"제가 잘 모르지만 우리 때보다는 더 잘 살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소수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거죠.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심해져 없는 서민들은 더욱 힘들어지고 중산층은 줄어든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그들은 이런 저런 세상사를 나누느라 힘든 줄도 모른다. 가정의 소사를 얘기하고 청년부터 장년층까지 만연된 실업문제의 안타까움을 나누는 사이 일의 고단함도 잊혀진다.

주문 생산을 하는 아낙 우리 밀은 하루에 200g짜리 과자 90여 봉지를 생산한다. 또 틈틈이 빵을 만들어 어려운 기관이나 독거 노인에게 베푸는 넉넉함도 잊지 않는다.

ⓒ 김진석
아직은 첫 걸음인지라 큰 매출을 올리지 못해도 현재 20여 명의 고정 고객과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이 있어 전망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당장은 많이 팔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발생하면 현실적으론 좋겠죠. 하지만 아직 그건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이익 창출을 위한 영리 목적보다는 우리의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아요. 우리 먹거리를 살리는 하나의 건전한 음식문화 혹은 장인정신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싶어요."

아낙 우리밀 과자를 통해 흔들리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최씨. 그는 당장의 매출보다 '초심'을 나눌 수 있는 아낙 우리밀 2호점이 생길 수 있을지가 더 염려스러웠다.

15평 남짓의 작은 공간. 믹서기, 오븐 등 과자를 굽는 장비가 꽉 들어선 그 공간엔 과자 굽는 고소한 냄새와 훈훈한 사람 온기가 감돌았다.

가족의 음식만큼 남의 음식도 귀히 여기는 어머니가 있었으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돕기 위해 한 걸음에 달려온 왕언니가 있었고 어머니를 응원하는 듬직한 아들이 있었다.

여성 가장들의 자활, 어린이들의 건강, 우리 먹거리 살리기까지 한 번에 일석 삼조의 순이익을(?) 창출하는 우리밀 과자점이 과연 그들의 초심처럼 '희망'을 구울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인생 선배인 왕언니 이연주씨가 이들의 앞날에 슬쩍 '힌트'(?)를 제공한다.

"모든 어머니는 강해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아이들을 먹여 살려 잘 키워야 한다는 의지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으니 이를 본받아 많은 여성 가장들이 용기를 내 무슨 일이든 도전하며 살았으면 해요. 좋은 뜻을 잃지 않고 어머니들이 힘을 합하면 잘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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