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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첫날부터 나는 결코 왕비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기 5년전, 1992년 12월 초 찰스 왕세자와 11년이라는 우여곡절의 결혼 생활 끝에 별거를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 프랑스 경찰은 2년의 조사 끝에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리고 영국 정부도 동의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세인의 의혹과 이곳저곳에서 불거져 나오는 배후 음모에 의한 '살해설'까지 온갖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다이애나는 왜 스스로 "왕비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지난 6년간 이런 본질적인 의문을 둘러싸고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다이애나의 꿈- 윌리엄과 해리>(크리스토퍼 앤더슨 지음, 유경찬 번역)는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왕실의 반목, 찰스 왕세자와 그의 연인 카밀라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시작된 다이애나의 불행,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별, 그리고 두 왕자 윌리엄과 해리의 성장 과정에 쏟아부은 다이애나의 애틋한 사랑과 크고 작은 일화들을 파노라마처럼 흥미롭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왜 다이애나가 세계인의 가슴 속에 사랑으로 기억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전세계의 선남선녀가 동경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빼어난 외모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었던 맑고 깨끗한 한 영혼을 만날 수 있다. 거대한 영국 왕실의 낡고 찌든 권위에 도전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두 아들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본분을 다하고자 했던 다이애나의 진솔한 삶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이애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여론이 모여 다이애나 사후 6년만에 공개청문회를 열도록 압력을 가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영국 정부가 결정한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다이애나 사망 의혹이 깔끔하게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다이애나를 기억하는 세계인의 시선에서 영국 왕실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목적은 결코 사건 해결이나 설명에 있지 않다. 다이애나와 왕실, 찰스 황태자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갈등과 대결, 오해로 빚어지는 번민 속에서도 두 왕자를 훌륭하게 키우고자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왕실의 규격화된 '제왕 교육'을 단호히 거부하고 윌리엄과 해리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인정이 메마른 '박제 인간'이 되는 것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호흡을 함께 하는 왕자로 성장시키고자 고독한 투쟁(?)을 펼쳤던 어머니였다.

영국 정부는 '의혹' 여론을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다고 판단, 지난 연말 재조사를 위한 '다이애나 청문회'를 공식 발표했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찰스 왕세자와 연인 카밀라는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그리고 '다이애나 이미지 지우기'에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대응해 온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 영국 왕실은 어떤 태도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우리는 영국 왕실의 권위에 맞서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랑스러운 다이애나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굶주려 뼈만 앙상한 어린이를 껴안고 눈물 흘리던 모습, 누구도 접촉을 꺼리던 에이즈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던 그녀의 표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진 1997년 8월말 이후, 한동안 우리들의 눈을 텔레비전 앞에 끌어 모았던 아픈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도 영국 왕실은 다이애나 이미지 왜곡에 나서서 '다이애나의 연인' 도디 파예드와 관계를 부각시켜 '바람난 여인'이라는 누명을 씌우기에 이르렀고 많은 사람들은 왕실의 발표에 노골적인 실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는 찰스와 이혼을 집요하게 종용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진실을 알고 싶고, 아들 파예드를 다이애나의 연인이 되도록 막후에서 교묘하게 지원했던 이집트의 거부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집념과 '음모' 발언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도디의 아버지 알 파예드는 '런던 시민의 자존심'이라는 해롯 백화점을 소유함으로써 영국인과 여왕의 콧대를 꺾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영국과 왕실의 거대한 음모에 의해 다이애나와 아들 도디 파예드가 '살해'되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다이애나의 꿈 윌리엄과 해리>는 1981년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 1992년 별거, 1997년 사망, 그리고 다이애나가 '유일한 유산’이라고 말했던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의 성장기를 통해 36살 다이애나의 일생이 영국민과 세계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다.

곧 시작될 '다이애나 청문회'를 통해 영국 왕실이 음모에서 말끔히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다아애나가 우리에게 영원한 '연인'으로 이미지 훼손 없이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적지 않은 기대를 갖게 한다.

덧붙이는 글 | 평범한 다이애나 팬으로서 간절한 소망 하나를 부탁 드립니다. <오마이뉴스>에서도 '다이애나 청문회'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다이애나의 꿈 - 윌리엄과 해리

크리스토퍼 앤더슨 지음, 유경찬 옮김, 아라크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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