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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그것이 제사상임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지방'(紙榜)이다. 물론 집안에 사당이 있을 정도로 유서가 있는 집안은 지방 대신에 신주를 모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방을 써서 제사상 앞에 붙여 놓거나 혹은 세워 놓고 제사를 지낸다.

지방은 한 마디로 그날 제사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방에는 제사 받는 사람이 부계인 경우 성(姓)이나 이름을 기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나 할머니 같은 모계쪽은 성씨를 기록해 준다. 이것은 그 분이 어느 집안에서 우리 집안으로 시집 '왔는지'를 표시해 주는 것인 동시에, 그러한 어머니 혹은 할머니를 보내 주신 그 쪽 집안에 감사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남녀차별의 요소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방' 쓰기의 어려움

지방을 쓰는 방법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형 등에 따라서 각각 지방 쓰는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을 한문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한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더더욱 어렵게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냥 베껴 쓰거나 혹은 그냥 한글로 써 버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지방은 정해진 방법에 의해서 쓰여진다고 생각하며, 그 방법과 규칙은 상당히 '엄격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이미 세 번에 걸쳐서 제사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동양의 예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혈연중심주의와 '정감'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기본적 행동이 예로 표면화 된 것이라는 입장을 계속해서 개진해왔다.

지방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무슨 엄청난 주술적 의미나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 역시 인간의 가장 일상적인 정감을 바탕으로,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표시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한글이 없던 시기에 만들어짐으로 인해 한자를 사용해서 적어 왔으며, 또한 그 시대의 인간에 대한 평가가 고스란히 녹아 있을 뿐이다.

가장 대표적인 지방, 즉 아버지 제사 때 쓰는 지방을 예로 들어서 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아버지 제사인 경우는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혹은 '현고처사부군신위(顯考處士府君神位)'라고 쓴다. 먼저 가장 첫 글자인 현(顯)이라는 글자는 '드러나다'·'나타나다'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로, 매우 밝은 상태 혹은 환한 상태를 의미한다. 동시에 지위와 높아진다는 의미에서 존(尊)자와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 글자가 지방에서 사용될 때에는 '고(考)'자를 꾸며주는 말로 사용된다. 여기에서 고(考)자는 '돌아가신 아버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고(顯考)'라는 말은 '밝으신 아버지' 혹은 '존경스러운 아버지'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마치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하면서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할아버지는 한 대 더 건너뛴다는 의미를 가진 조(祖)자를 써 줌으로써, 조고(祖考)로 쓴다. 고나 조고 같은 경우는 제사 받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제주와의 관계를 표시하는 것이다. 제사에서 지방은 제주를 중심으로 제사를 받는 사람이 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 형인지 숙부인지를 표시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현고라는 말의 의미를 엄밀하게 새겨보면, '제사를 지내는 제주의 존경하는 아버지'와 같은 의미가 되겠다.

그 다음은 '학생부군(學生府君)'에 대한 의미이다. '처사부군(處士府君)' 역시 같은 말이다. 우선 여기에서 '부군(府君)'부터 그 의미를 먼저 알아보자. 부(府)자는 원래 창고나 혹은 고을을 의미하는 한자이다. 따라서 '고을의 가장 높은 분(君)'이 부군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실제 중국 한나라 때에는 고을의 태수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의미가 변하여서 '존경하는 어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지방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나 자기 조상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었다. 지금 같은 용법으로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부르는 '○○선생님' '○○어르신' 보다 더 극존칭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다음은 학생(學生) 혹은 처사(處士)에 대한 의미이다. 학생이라는 말은 한 마디로 평생 배우기만 했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평생 작은 벼슬하나 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다시 말해, 작은 벼슬이라도 했으면 학생 대신에 벼슬이름이나 혹은 부여받은 봉작(封爵)을 쓴다. 한번이라도 영의정을 지냈으면, '영의정부군'으로 쓰거나 혹은 그 받은 봉작이 '숭록대부'라면 '숭록대부부군'이라고 쓰는 것이다.

처사 역시 같은 의미이다. 처사로 유명한 사람은 남명 조식선생으로, 수많은 관직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뿌리치고 산림에 은거해서 살았던 사람이다. 따라서 처사라는 말은 관직을 탐하지 않고 산아에 묻혀서 평생 공부만 했던 조선시대의 선비를 일컫는 것이다. 매우 명예로운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학생과 일맥 상통하며, 이 때문에 벼슬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학생 혹은 처사로 부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우 재미있는 의미가 숨어 있다. 동양사회를 지배했던 유가 전통에서 '벼슬'은 단순한 관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유학의 영원한 목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로 번역할 수 있는데, 단순히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곧 도덕적 수양을 의미하며, 그 목적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인 성인에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성인이 된 이후에 비로소 치인, 즉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따라서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으로, 남을 다스린다는 것은 스스로를 닦는 것에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 받는 관직은 곧 도덕적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완성되었는가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었다. 이 때문에 벼슬은 단순한 관직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동시에 벼슬길에 나아간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청결성과 완성된 인격을 요구했다.

특히 이러한 기준은 조선시대에 오면서 일반화되었고, 성리학이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도덕으로 놓고, 벼슬은 그러한 도덕수양을 마치고 치인의 단계로 접어든 사람임을 의미했던 것이다. 물론 실제 조선시대의 벼슬아치들이 그러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유학의 목표와 그 시대 사람을 평가하는 목표는 그랬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들이 다스리는 왕도정치와 태평성대에 대한 꿈을 성인을 통해서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치인의 단계로 넘어서지 못했던 사람들은 결국 학생으로서 자신을 닦는 일을 하다가 죽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그렇지 않으면 벼슬에 나갈 수 있는 인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산림에 은거하면서 자신을 계속해서 닦았던 처사였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학생'과 '처사'에는 치인의 단계로 넘어서지 못했을 뿐, 도덕적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수양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 살았었을 때의 벼슬을 기록해 주는 것은, 그것이 바로 도덕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그 사람을 대변해 주는 중요한 평가기준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인생이 가진 업적과 그 사람의 도덕수양의 정도가 바로 지방에 쓰여져 있는 '학생' 혹은 기타 벼슬이름을 통해 한 마디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람이 죽어서 가 있는 세상에서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신위(神位)라는 말은 신의 자리로, 산 사람의 자리가 아님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말은 '평생 동안 열심히 도덕적으로 자신을 수양하시다가 돌아가신 존경하는 아버지의 자리'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지방은 유교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담겨 있는 내용이다. 그 시대에 사람을 어떠한 기준으로 보았고, 그것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하는 것이 지방에는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조선의 사대부는 실제로 자신들이 그렇게 살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떠나, 죽은 사람에게 대해서도 철저한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평가했으며 동시에 살아서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철저한 도덕성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지방을 쓸 것인가? 여기에는 우리 시대의 사람에 대한 평가가 들어갈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굳이 도덕적 기준이 아니어도 된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제사를 받는 사람이 가장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기록하면 된다.

그래서 지방에는 제주와 제사 받는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과,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직책이나 단어, 그리고 그것을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호칭 정도가 들어가면 매우 좋은 지방이 될 것 같다. 그것이 한글이건 한문이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지방 쓰는 자세한 방법은 여러 책들이나 인터넷에서도 찾아 보실 수 있으므로 생략했습니다. 다음에는 제사에 대한 현대적 의미와 새로운 방향 모색을 할 수 있는 기사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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