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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나트륨 불빛이 처량하게 느껴지는 세밑입니다.
주황 나트륨 불빛이 처량하게 느껴지는 세밑입니다. ⓒ 유성호

그런 아내 역시 어제부터는 완전히 자리보존을 하고 누워 있다. 낮에 잠시 병원에 다녀왔는데 양쪽 편도선이 많이 부었단다. 병원에서 항생제와 포도당 주사를 맞고 돌아온 아내는 힘없이 침대에 쓰러졌다. 때문에 아이들 뒷바라지는 온전히 내 몫이 됐다.

새해를 맞는 액땜쯤으로 생각하기엔 '아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날씨마저 눈보라를 동반한 영하의 기온으로 사방이 꽁꽁 얼어버렸다. 속상한 마음에 담배를 한 대 빼물고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파트 비상 계단 '그 자리'에 선다. 주황의 나트륨 등 밑으로 한 여름 밤 나방 같은 눈이 가로로 흩날리고 있다. 습관처럼 카메라를 들고 나와 몇 방 찍어댄다.

건물 외벽 프래카드가 강풍에 비명을 지릅니다.
건물 외벽 프래카드가 강풍에 비명을 지릅니다. ⓒ 유성호

도로 위 차들은 거북이 마냥 주춤대고 아스팔트 위의 눈은 바람이 비질하듯 도로 한켠으로 몰아간다. 섣달 그믐께 밤이 처량하기 짝이 없다. 멀리 불 밝힌 아파트 창문 속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잡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갑자기 파다닥거리며 건물 외벽에 걸어 놓은 플래카드가 강풍에 비명을 지른다. 형수의 수술 경과는 어찌 됐을까. 내일이면 아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타성(他姓)으로 시집을 와서 한 집안 식구가 된 유가네 며느리들의 병고(病苦)는 왠지 '미안한 가슴아픔'이란 단어로 표현된다.

심란한 마음으로 끽연장소인 비상계단 왕래가 잦습니다.
심란한 마음으로 끽연장소인 비상계단 왕래가 잦습니다. ⓒ 유성호

낮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그랬다.
"차라리 명절증후군이었으면 좋겠어요. 옆에서 보자니 안쓰럽네요"
그러자 어머니의 입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나왔다.
"집에 우환이 있으니 이번 차례는 생략하자."

날이 추워진단다. 눈발이 귀경길에 나선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뉴스도 들린다. 정말 어수선한 세밑이다. 어깨가 자꾸 움츠러든다. 다른 날보다 곱절은 더 많이 담배를 빼 물고 들락거린다. 내일은 태양이 환하게 떠올랐으면 좋겠다. 형수도 내일이면 퇴원을 한다니 갑신(甲申) 새해는 길사(吉事)가 많을 징조라고 자위를 해본다.

"유가네 집에 시집와서 고달픈 며느리들이여! 건강하게 훌훌 털고 일어나 새날 밝은 태양을 함께 맞읍시다."
형수의 쾌차와 아내의 회복을 기원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힘차게 솟아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힘차게 솟아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 유성호

덧붙이는 글 |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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