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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연을 참 많이 날렸다. 지금처럼 연을 돈만 주면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근처 뒷산에서 얇은 대나무를 잘라다가 한지나 다 쓴 공책을 찢어 손수 만들어 날리곤 했다.
바닷가에 살았던 덕택에 연은 짠 바람을 가득히 머금고 하늘 높이 솟구쳤고 그럴 때마다 혹시 연이 너무 멀리 날아가버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바다 한 가운데 퐁당 빠져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곤 했었다.
새해 아침, 오랜만에 바닷가에서 연을 날려보기로 했다. 유난히도 아쉬운 일이 많았던 지난 한 해를 연에 가득 담아 보내려는 기원에, 바닷가에서 파는 비닐로 된 독수리 모양 연을 하나 샀다.
밤을 새워가며 형과 함께 만들었던 대나무 가오리연은 아니었지만, 무슨 연이든간에 그저 언짢았던 일을 꾹꾹 눌러담아 날려보내기만 하면 될터였다.
그런데 같이 갔던 세살난 조카가 얼레를 같이 잡고 열심히 놀다가 삼촌한테 묻는다.
"삼춘아 삼춘아, 연이 무섭대. 그래서 빨리 내려달래."
마침 바람이 높게 불고 있어 연줄을 끊어버리면 아주 저 멀리까지 연이 날아가버릴 것 같아 일부러 실을 많이 풀어서 내심 연줄을 잘라버리려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조카가 '연이 무서워 하니 빨리 내려달라'고 조른다.
그 순수한 표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면서도 문득, 진짜로 연이 무서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연이 아닌 내가 무서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지 못한 지난 일들을 몽땅 털어버리면 될 것을….
지난 일로부터 도망치듯, 멀리 날려보낼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품고 보듬어, 다시는 그만큼 힘들지 말아야 할 것인데…. 조카 손을 잡고 날린 새해 첫 연은, 그래서 결국 거실 한쪽 귀퉁이에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내년 설에는 이런 저런 고민 없이, 뒷산 대나무를 잘라, 다시금 가오리연을 한 번 만들어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 새 해 복 넘치게 받으시고,혹시 남으시는 복 있으시면 아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주시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