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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차례 상을 차리기 위해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늘 그렇듯이 만들어진 음식을 상위에 진설하고, 모두가 조상에게 세배하는 기분으로 차례를 드린다. 우리의 전통이 가져다 준 또 다른 한 해는 이렇게 시작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차례를 통해 조상들에게 고하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기려서 제사상을 차리는 것은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이다. 버려야할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다.

제사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식은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제사를 반드시 지내야 하며, 그 형식을 가능한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 있다. 둘째는 제사를 지내기는 지내되, 봉건적 잔재들을 없앰으로써 현대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제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사는 과거의 문화적 산물이므로, 현대에는 없애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세번째 입장을 지지하는 논거들은 상당히 많다. 제사는 남성중심주의의 산물이며, 이러한 경향은 결국 여성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 중요한 논거 가운데 하나이다. 죽도록 고생만 하고 결국은 제사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를 통해 남녀 불평등을 양산시켜 왔다는 것이다.

또한 제사는 유교나 성리학에 근간한 형식으로,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문화를 우리 조상들이 맹목적으로 신뢰함으로써 생긴 결과라는 입장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교나 성리학적 요소가 더 이상 일반적인 세계관으로 작용하지 않는 현대에 제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입장 외에도 장자 우선이나 남아 선호사상에 불을 지피는 요소로 작용해왔다는 지적도 있다. 제사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아를 생산해야 했으며, 이 때문에 남아 선호사상이 일반적 성향으로 자리 매김 했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부모들은 장자를 자신의 제사를 지낼 줄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인식함으로써, 장남과 차남의 차별까지 만들어 냈다고 본다. 한마디로 모든 봉건적 요소를 한꺼번에 가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결코 제사의 긍정적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제사에 아무리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온갖 차별적 요소를 양산해 내는 기능만 하고 있다면 그것을 청산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그러나 가능한 부정적 요소를 삭제하면서 긍정적 요소를 부각시켜 갈 수 있다면, 이것을 보존하는 것 역시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입장이 바로 의미를 살려서 현대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행사가 되도록 해야 하다는 쪽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제사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고,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에도 유용한지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가 설을 맞이하면서 제사의 의미를 돌아 본 것은 이 때문이다. 제사는 가족 공동체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의식이다. 가족간의 결속을 강화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잊지 못하는 인간의 기본적 정감을 예제화 시킨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 가족 공동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제사는 청산되어야 하겠지만, 가족 공동체가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제사의 의미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것이 고스란히 의미 있기 위해서는 과거 유교적 세계관에 바탕해서 만들어졌던 많은 형식들을 재검증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정적 요소를 가능한 탈색시키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의미만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전통의 고수라는 측면에서 보면 예전의 형식을 그대로 잇는 것도 의미 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전통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봉건적 잔재를 걷어내면서도 그 의미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제사를 지내야 하는 모든 현대인들 스스로 고민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필자가 어떤 일방적 대안을 제시한다고 해서, 각기 다른 가족 구성원을 가진 모든 현대인들의 대안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여 잘못될 경우 이것은 또 다른 일방적 예제를 만드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굳이 예를 들어본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행될 수 있다면 많은 부분에서 봉건적 색채를 탈색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 음식 만드는 것을 여성 일방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준비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형제들이 있다면 맏형 혼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 두는 것이 아니라, 제사에 올릴 음식을 각각 맡아서 준비하는 방식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일년에 한 두 번이므로 잔치를 준비하는 즐거움으로 모두가 함께 모여서 음식 장만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음식을 줄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준비해야 한다. 또한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을 함께 먹어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천편일률적인 제사 음식이 아니라, 망자가 좋아했고 또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제사의 궁극적 의미가 '부모의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그분이 좋아하셨던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라면 그 분이 좋아하셨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더 의미 있다.

특히 제사 음식은 그 대상이 '하늘'이나 '조상신 일반'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의 부모님만이 좋아하셨던 것까지 세세하게 규정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제사상은 '모든 음식'을 대표할 수 있도록 잤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모두 좋아하셨던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전통방식을 고수해야 할 입장이 아니라면, 부모가 좋아하셨던 음식을 진설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형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제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변형시켜 그 가족들만의 예제를 만들 수 있다. 제주를 형제가 돌아가면서 맡는다거나, 여성에게도 제주의 위치를 부여해서 함께 참여하게 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모두의 제사가 될 수 있도록 형식을 새롭게 만들고, 그 속에 소속되어 있는 가족 구성원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궁극적으로 '모든 가족들이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도록 하는 목적'에 충실하기만 하면, 형식은 어떠한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

지방도 그렇다. 영정 사진이 있으면, 그것으로 대신해도 충분하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초상화를 그려본다거나,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생각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대표적인 모습을 지방으로 기록하고, 그 분의 자리인 것을 표시해 주면 된다. 굳이 한문의 형식이나 의미에 매어 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지방'과 죽은 사람, 그리고 산 사람>에서 이미 밝혀 놓았다.

이러한 제사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돌아가신 망자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으면 족하다. 동시에 그분들을 통해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결속을 공고히 하고, 함께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날로 만들어 가는 것도 의미 있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현대인들이 이날 하루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서로 식사를 같이 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현대인에게도 제사는 여전히 유효한 문화로 자리 매김 할 수 있다.

무조건 청산이나, 무조건 전통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두 입장만이 대안은 아니다.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거들을 없앨 수만 있다면, 가족공동체의 결속을 지향하고 있는 제사를 유지시키는 것도 의미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남녀차별적 요소나 남아선호의 요소를 가진 제사형식은 실제 청산되는 것이 현대에는 유용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없애고도 제사는 얼마든지 그 의미를 살려서 지낼 수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제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빈대잡기 위해서 초가를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 가족중심주의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이 혈연주의나 연고주의를 지향하고, 남녀 불평등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양의 개인주의가 여기에 대한 대안은 결코 아니다. 서양의 개인주의를 그 대안으로 채택할 경우, 우리 사회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운 가족제도마저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혈연주의나 연고주의, 그리고 남녀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건전한 가족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것인 동시에,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대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시적 안목 속에서 현대의 제사가 어떠한 기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것으로 설날을 맞아 돌아보는 제사 이야기를 마칩니다. 제사가 모두에게 의미있기 위한 작은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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