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중기에 나온 책 <사시찬요((四時纂要:세조의 명을 받아 강희맹이 사철의 농사법에 대해 기술한 책)>, <구황촬요(救荒撮要:조선 명종 9년 승지 이택(李擇)의 건의에 따라 왕명으로 편찬한 책. 흉년이 들었을 때 연명하는 방법과 굶주려 부종이 생겼을 때의 치료법을 소개)>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조선 영조 42년 유중림(柳重臨)이 간행한 농사요결서(農事要訣書)> 등에는 좋은 장을 담그는 방법이 나와 있다.
<증보산림경제>의 장제품조(醬諸品條)의 첫머리에는 “장은 모든 음식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아니 하면 좋은 채소와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으로 할 수 없다. 설혹 촌야(村野)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어도 여러 가지 좋은 맛의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우선 장 담그기에 유의하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게 함이 도리이다”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 식생활에선 장류가 얼마나 중요한 식품이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맘때쯤이면 가정에서는 장(醬) 담그기를 한다. 예로부터 장 담그기는 집안의 큰 연중 행사의 하나였으므로, 안주인들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장을 담그고, 정결하게 간수하여 왔다. 훌륭한 장맛의 비결은 안주인들의 손끝 정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장 담그는 때를 맞아 2월 3일(화)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와룡동 한국전통음식연구소(소장 윤숙자)는 10층 장독대에서 '전통 장(醬) 담그기' 행사를 연다.
이 행사는 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이 직접 '전통 장(醬)의 과학적 우수성과 맛있는 장을 만들기 위하여 좋은 메주와 소금 고르는 법' 등을 강연한다.
또 전통적인 장 담그는 과정 그대로를 실제로 재연하여 ‘청솔가지를 태워 장독 소독하기, 소금을 거르고 달걀로 소금기 측정하기, 메주를 넣고 달궈진 숯 띄우기, 버선을 장독에 거꾸로 붙이기' 등을 한다. 이어서 소금물에 불린 메주와 보리쌀 죽을 이용하여 전통 된장을 쑤고, 항아리에 척척이 담아 마른 홍고추를 된장 속에 깊숙이 넣는 등 쉽고 재미있는 ‘전통장 만들기’를 배울 수 있다.
한국의 맛은 바로 ‘간장, 된장, 고추장에서 나오는 감칠맛’이라고들 한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장맛을 집안의 근본이 되는 맛으로 소중히 여기고, 정성을 다하여 담아 간수하지만 현대엔 장이 산업화 되면서 고유한 장맛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물론 장을 담그던 전통의 정서와 풍속이 사라져 가고 있다.
심지어는 장 담그기를 기업에 떠넘기기도 모자라서 일부 부유층은 일본의 장을 수입해 먹기도 한다. 하지만 공장에서 담근 것과 일본 수입품은 재래식 된장에 비해 항암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된장의 의미가 많이 사라진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한국음식의 자존심, 즉 한국음식의 기본이 되는 '전통 장 담그기의 시연'을 통하여 현대인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음식문화를 전하고자 이 행사를 연다고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이지만 참여자들이 실제 담가볼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남는다.
여기에서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장 담그는 비법’과 된장의 의미, 그리고 활용법을 들어보자.
“장을 담글 때는 잘 씻어 말린 장독에 메주를 넣고, 체에 받쳐 거른 소금물을 메주가 잠길 정도로 붓는다. 그리고 고추, 참숯 등을 넣는다. 고추의 붉은색은 악귀를 쫓는다고 해서 띄우고, 참숯은 살균작용을 하기 때문에 꼭 넣는다. 장을 담근 장독에는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왼새끼를 꼬아 솔잎, 고추, 한지를 끼운 금줄을 쳐 장맛을 지켰다.
한 집안의 장맛이 좋다는 것은 그 집안의 안주인이 부지런하다는 뜻이 되고, 그러한 집안이 번성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된장은 간장과 함께 한국적인 맛을 상징하는 저장성 조미식품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데 기본이며, 주식인 쌀과 보리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완해 주는 영양 만점이면서 과학적인 발효식품이다.
된장은 우리 생활에 매우 친숙하여 민간에서는 화상 부위에 된장을 발라 열을 내리게 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체했을 때와 기침할 때 쓰는 약재로도 이용해왔다. 최근에 여러 연구에 의하면 된장은 혈중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것을 막아 동맥경화를 방지하며, 사포닌 성분은 용혈작용, 지방대사의 활성화, 산화억제, 노화방지에 기여한다고 알려져 있고, 항암억제의 효능이 있다고 하여 된장의 섭취를 권장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음식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전엔 서양의 과학계가 메주에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이 있다고 하여 된장을 부정적인 평가를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비만협회”가 살을 빼기 위해서 된장국 등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식이요법을 할 것을 권장하고 있을 정도로 된장의 값어치는 급등하고 있다.
된장의 종류는 청국장(전국장), 막장, 담북장, 지례장, 두부장, 가루장, 즙장(거창), 청태장(경기도), 보리등겨장(경상도), 깻묵장(경기도), 빠개장(충청도), 지름장(충청도) 등 지역과 만드는 방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우리 선조들은 36가지의 장을 맛있게 담을 줄 아는 것을 훌륭한 며느리의 덕목으로 보았었다.
우리 조상들은 장맛을 좋게 하기 위하여 길일을 택하여 장을 담갔는데 메주는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음력 10월경에 햇콩을 이용하여 만들고, 장은 주로 음력 정월에 담갔다. 장을 담그는 그릇과 장 담그는 물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또 담근 장의 보관에도 정성을 다했다. 된장을 보관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는데 이를 예방하려면 마른 고추씨나 멸치 머리 부분을 잘게 빻아 넣어주고, 된장을 떠낼 때마다 빈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꼭꼭 눌러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 예전엔 햇볕이 강한 날에 된장독의 뚜껑을 열어 놓는 풍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된장의 변질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봄이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멀리서 봄의 향기가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새봄이 되면 달래, 냉이 등 각종 나물을 뜯어서 뚝배기에 된장국을 끓인다. 겨우내 모자랐던 영양분을 보충하려는 슬기로움인 것이다. 요사이 우리 식생활이 우리 몸에 맞지 않는 패스트푸드와 육식 위주로 바뀌면서 비만, 콜레스테롤, 암 등 성인병이 요란하다.
병에 걸려 삶을 고단하게 살려면 몰라도 건강한 몸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된장 등 우리의 전통음식을 즐겨 먹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장 담그기 재연행사’는 식구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부들에겐 기쁜 소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