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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투구연습 중 오스프리(물수리) 새에 공을 던져 상해를 입혀 죽게한 혐의로 피소된 유재국(20·시카고 컵스) 선수가 지난 27일 (이하 미국시간) 플로리다주 볼루시아 카운티 프레디 워든 판사로부터 1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 판결을 받았다고 올랜도 센티널이 28일치 로컬란에서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유재국 선수가 궐석중인 가운데 진행된 재판에서 에드와드 위스 검사는 "백만장자(유재국 선수)에게 소액의 벌금만을 물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면서 "유 선수의 행위를 손목을 한번 찰싹 때리는 것 정도로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유 선수는 판결에 앞서 후드 변호사를 통해 검사가 구형한 100시간의 사회봉사 대신 1000달러의 벌금을 내겠다고 요청했으나, 결국 기각 판결을 받고 말았다. 이날 카운티 법원은 유 선수의 사회봉사 명령 이행을 2개월 연장해 달라는 후드 변호사의 요청도 기각하고 유 선수가 2월말까지 사회봉사를 마치도록 명령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미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 산하 싱글A 데이토나 컵스 소속 투수였던 유 선수는 지난해 4월 21일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 잭키 로빈스 파크에서 연습도중 연습장 외야 중앙 왼편 횃대에 앉아 있던 오스프리를 겨냥해 공을 던져 새의 눈 부위에 심각한 상처를 입혀 카운티 검찰당국에 의해 피소된 바 있다.

당시 유 선수의 이러한 동물학대 뉴스는 올랜도 센티널과 데이토나 비치 뉴스 저널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역 주민들의 분노를 자아냈을 뿐 아니라, 이 뉴스가 전파를 타고 국제적으로 알려지면서 국제 야생동물보호협회 등으로 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유 선수는 이 사건으로 구단의 징계를 받아 컵스 산하 최하위급인 미시간의 싱글 A 랜싱 럭넛의 최하위 투수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했는데, 동물애호가들은 미시간으로 쫓겨간 유 선수에게 살해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한편, 시카고 컵스 산하의 또다른 구단인 더블 A 웨스트 테네시 다이아 몬드 잭스의 투수로, 2월 중순경부터 봄철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유 선수는 구단과 법원의 특별 배려가 없는 한 이번 판결로 이번 시즌 출전에 큰 차질을 빗게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이곳 현지 여론은 앞으로 유 선수의 '악몽'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지역 언론은 유 선수에게 내려진 형벌이 너무 가볍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왔다. 지난해 160만달러 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시카가 컵스에 입단한 유 선수의 동물학대 소식은 지역 언론들에 의해 '시리즈' 로 상세하고도 예민하게 전해졌다.

플로리다주 3대 유력지 가운데 하나인 올랜도 센티널은 지난해 4월 21일 이후 올 1월 28일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19차례나 유 선수 사건을 직·간접으로 다루었는데, 이 중 열13차례는 유 선수 사건에 직접 초점을 맞춘 기사이고, 나머지는 야생동물 보호 관련 기사에서 유 선수의 동물학대 사건을 잠깐씩 언급했다.

지난해 4월 21일 이후 9개월 남짓 올랜도 센티널이 올린 유 선수의 동물학대 관련 기사의 제목을 기사형태와 함께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오스프리가 눈을 잃을 것 같다(4월 24일, 로컬기사). 야구 선수, 오스프리 상해 후에 피소되다(4월 25일, 로컬기사). 새 머리를 맞힌 사건, 동물 애호가들의 격분을 사다(4월 25일, 여론). 야구선수에 의해 가격당한 새 결국 죽다(4월 29일, 로컬). 새 뿐이라고?(5월 1일, 사설). 투수에게 맞은 새 간장 파열 밝혀지다(5월 8일. 로컬). 투수, 법정 출두 연기되다(6월 17일, 로컬). 오스프리 킬러, 그의 엄청난 과오를 뉘우치다(7월 13일, 특집기사). 사과, 받아들여 지지 않다(7월 20일, 스포츠). 오스프리 살해 사건 심리 연기되다(8월 1일, 로컬). 투수, 500불 벌금형 직면(8월 26일, 로컬). 투수, 사회봉사 프로그램에 등록하지 않다(2003년 12월 24일, 로컬). 버드 킬러, 돈으로 사회봉사 대체 허용되지 않다(2004년 1월 28일, 로컬).

미국 프로-아마추어 골퍼들의 메카인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주거지를 정하고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는 박세리, 김미현, 장정, 박인비 선수 기사 외에 올랜도 센티널지에 이처럼 시리즈로 여러번 기사가 오른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

이 곳에서는 야생 조류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면 2급 경범에 해당되어 5백불의 벌금과 최고 60일 복역형을 받게 된다. 유 선수는 새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범인데다 미국 문화를 잘 모르는 나이 어린 외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본인이 크게 뉘우치고 있는 점이 참작되어 '5백불 벌금에 100시간 사회봉사'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 여론의 '형벌'에 비할 바가 못된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유명 야구선수가 연습 중 장난삼아 던진 공이 새에 맞아 재수없게 죽었기로 서니 신문에 사설로 나오고, 특집으로 다뤄지는 등 왠 호들갑들이냐"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만약 이러한 생각을 이곳에서 계속 갖게 된다면, 바로 '문화적 문맹' 소리를 듣기에 딱 알맞을 것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서는 자기 집앞에 나무를 사다 심어 놓고 4인치 정도 이상 크기로 자란 나무를 자르려면 마을 운영위원회나 시청에 신고해야만 한다. 종종 한인동포들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곰사냥, 사슴사냥 등 밀렵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주마다 특별 수렵기간을 두어 일정 숫자 이상은 사냥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집앞 잔디밭에 뱀이 지나가도 함부로 죽이기 보다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물고기도 규정된 크기나 숫자를 넘겨 잡거나 산란기에 잡으면 보통 1마리당 500불 정도의 벌금을 물린다.

자연환경의 훼손에 대한 벌칙이 유난한 이곳에서는(보통 사람이 아닌) 유명 스포츠 선수가 새 한마리를 죽인 것도 큰 뉴스 거리가 된다. 유명하면 유명한 만큼 그 사람의 조그마한 변칙 불법 행위도 사회의 지탄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는 보통사람이 속도 위반 티켓을 받으면 문제가 될 수 없지만, 대통령의 딸이 티켓을 받으면 문제가 되는 것과 같다.

몇 년 전, 대학풋볼로 유명한 플로리다 대학의 유망한 와이드 리시버 자바 게프니라는 선수가 개인 사물 보관함에서 동료선수의 몇푼 안되는 금품에 손을 댔다가 발각돼 여러 게임에 출장이 정지되어 뉴스거리가 되었다.

집이 가난한 이 선수는 출장정지가 풀려 난 후, 미 전국 대학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대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이 선수가 출장하는 게임마다 아나운서나 해설가들은 거의 빠짐없이 '과거에 이 선수가 동료 선수의 금품을 훔친 적도 있으나, 지금은 제정신 차리고 저렇게 잘한다' 는 식으로 '과거'를 들먹였다. 졸업후 엄청난 돈을 받고 프로 풋볼 선수가 된 후에도 그는 '대학시절 동료의 금품을 훔친 선수'로 종종 소개 된다.

여기서 걱정되는 것은 자바 게프니라는 선수의 '좀도둑' 스캔들과 유 선수의 '동물 살인' 스캔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자바 게프니의 스캔들은 '한 가난한 선수의 젊은 날에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지나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인 반면에, 유 선수의 스캔들은 '버드 킬러'라는 잔혹한 악명이 붙어 다닐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9·11 테러 이후로 대부분의 미국민들은 타국민이 자국 내의 '생명'을 건드리는 것에 대단히 민감한 편이다. 적이건 동지이건 '여차하면 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일단의 다른 미국민들은 명분없는 전쟁에서 자국 군대가 수많은 생명들을 앗아갔다는 사실 앞에 윤리적 자존심이 상해 있다.

이들은 자국 내에서나마 생명을 더욱 끔직히 여기는 것으로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 선수가 시속 96마일의 쾌속투구로 동네사람들의 친구인 오스프리의 새 머리를 맞혀 죽였으니….

'살인죄'로 '석고대죄'를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죄송하다'며 몇 번 머리를 조아리고는 '심부름꾼'을 시켜서 푼돈을 던져주려는 유 선수의 태도에 지역 여론은 또다시 분노하는 것 같다.

현재 분위기로 봐서 유 선수는 미 프로야구에서 아무리 두각을 나타내는 투수가 된다하더라도 '버드 킬러'라는 악명과 함께 플로리다 지역에서는 물론 미국 어느 주에 가서도 실력에 걸맞는 대접을 받기는 힘들 것 같다.

재판정에서 담당 검사는 유 선수 변호사 앞에서 미 전국과 캐나다는 물론 해외 동물 애호가 단체들로부터 날라온 수백통의 항의 서신들을 들어 보이고는 "당신은 백만장자(유재국 선수)를 데리고 와서 소량의 벌금으로 떼우려 들고 있다"고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기사 소개에서 보듯, 지역 언론은 내용은 물론 '버드 킬러'라는 흉악한 타이틀로 유 선수를 비난하고 있다.

물론 유 선수가 현재의 오스프리 악몽으로부터 벋어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유 선수는 100시간의 사회봉사를 '껌값'(1000달러)으로 떼우려는 알량하고도 한심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앞으로 유 선수가 기왕에 100시간을 봉사하려 마음 먹었다면, 미국에 입국하자 마자 부상당한 새를 보호하는 쉘터(보호소)로 달려가는 것은 어떨까? 미국인들이 친자식처럼 좋아하는 애완견들을 보호하는 쉘터에 가서 100시간을 더 봉사한다면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곳 동포들은 성프란시스의 손등과 어깨에 새떼들이 올라 앉아 있는 사진 혹은 애완견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프란다스의 개' 사진 같은 유재국 선수의 사진이 신문에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유 선수가 하루빨리 사회봉사를 마치고 오스프리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고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발행되는 코리아 위클리(한국주간) 2월 5일치에도 실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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