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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 겉그림입니다.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 겉그림입니다. ⓒ 연장통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은 우리들 사진이자 우리 이웃 사진입니다. 충청남도 금산에서 태어나 줄곧 금산에서 자랐다는 양해남씨는 금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진만을 담아서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우리 '금산' 사람들" 사진책일 텐데, 사진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내내 '꼭 금산사람이라고만 말하'기보다는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고, 또 우리 자신이기도 하며, 또 우리 이웃이기도 한 사람들 모습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여봐, 거기 젊은 양반! 왜 사진 찍는 거야?"
"아저씨 인상이 너무 좋아서요. 한 장 더 찍어도 될까요?"
"인상은 얼어죽을…"
"지금 거기 잘 서 계세요. 금방 사진 뽑아서 드릴게요"
"당신, 마술도 하는가 보지?" .. <12쪽>


양해남씨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 사진은 이렇게 나와서 모입니다. 길에서 만나고, 저자에서 만나고, 놀이잔치 마당에서 만나고, 골목에서 만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웃는 사람 얼굴만 나와서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양해남씨가 왜 웃는 얼굴만 담았는지는 책 뒤에 붙인 사진 소개(사진 한 장마다 어느 곳에서 언제 찍었으며, 찍힌 사람들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밝혀 놓았습니다)를 보다가 알았습니다.

.. 말하자면 근육과 피부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기름기가 흐르고 탱탱하게 살이 찐 것이 당연하고, 못 먹고 못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주름지고 힘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육과 피부를 아름답게 붙게 만드는 것은 바로 건강한 웃음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항상 고민 속에 사는 사람은 보기에 좋을 수가 없다. 웃음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않으며,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도 않는다. 누구나 평등한 '웃음'이야말로 우리의 얼굴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 <274~275쪽>

좋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르며 너른 웃음이라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만나는 얼굴 좋고 웃음 좋은 사람들 사진을 모아서 엮은 매무새도 참 반갑습니다.


자연스럽게 나누는 사진

책방에서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는 사진책을 처음 만나서 구경하면서 조금 멈칫했습니다.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 한 가지로만 담아서 자칫 치우친 모습만 보여 주지 않을까 하고요. 그래도 책방에 서서 구경하면 아까울 것 없으니 즐겁게 구경하자고 보며 300쪽에 가까운 두꺼운 사진책을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붙은 사진 찍은 이 말을 읽었습니다.

.. "와! 언제 찍은 사진이에요?"

현정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만큼 4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현정이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현정이는 그때의 상황을 기억해내며 더욱 재밌어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주고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도둑맞은 시간을 즐겁게 돌려주고자 한다.

"많이 변했지?"

현정이는 많이 쑥스러워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피부가 고왔다고 하면서 얼굴을 어루만졌다. 시간이 스쳐가는 모양이었다 .. <289쪽>


숨차고 빡빡한 삶을 살아오며 세상 참 힘들다고 느꼈다는 양해남씨입니다. 그런 양해남씨가 어느 결엔가 세상을 비꼬는 듯 이야기하면서도 잃지 않은 웃음을 만났고, 웃음꽃을 피워내는 이야기를 만났답니다. 그러면서 웃음을 달리 볼 수 있었고, 웃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죠.

드디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하고 느끼는 양해남씨. 양해남씨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세상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됩니다. 그리하여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고향인 금산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때론 가만히 서 있어 보라고 시키고 찍으며.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그들(양해남씨가 찍는 사람들)의 마음이 자연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자연미인이라 부른다"는 양해남씨. 사진 찍은 이 말을 읽은 뒤 책을 뒤에서 앞으로 거꾸로 다시 살핍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보던 사진과, 어떻게 해서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뒤 보는 사진 느낌이 다르군요. 책값 이만 원. 그래, 투자하자! 냉큼 책을 사듭니다.


비어 있는 웃음

책을 펼치다 보면 여러 쪽이 빕니다. 뭐지? 인쇄 사고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 뒤에 붙은 사진 소개를 찾아서 읽습니다.

.. 시골에서는 3,40대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금산도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다. 여기에 그들을 위해 빈자리를 마련해 놓는다. 어머니처럼 고향은 너그럽다 .. <281쪽>

그래요. 어느 시골에 가든 농사짓는 30,40대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20대를 만나는 일도 힘들고요. 50대 뒤끝을 달리는 아저씨, 아줌마가 가장 젊은 사람이라는 곳도 많지 않습니까. 시골이라고 할 일이 없는 곳은 아닌데, 또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이 낮거나 뒤떨어지는 일도 아닌데, 우리가 먹는 하루 세 끼니가 나오는 곳은 바로 시골인데,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시골 대접, 농사꾼 대접은 찬밥입니다. 그래서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에서도 30~40대 젊은 분들 모습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10대 초·중·고등학생은 있으나 20대를 넘긴 젊은이도 드물고, 30~40대는 거의 없습니다.

놀이잔치 마당에 나와서 민속춤을 추는 어느 분이 지게를 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양해남씨는 "요즘은 지게도 필요 없다. 튼튼한 기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라는 말을 붙입니다. 비어 있는 웃음자리는 아마도 이런 까닭 저런 까닭 때문에 비지 않았을까요? 튼튼한 기계도 좋으나 튼튼한 어깻죽지도 좋고 튼튼한 팔뚝도 좋은데. 우리들 스스로 우리들 자신에게 깃든 아름다움을 조금씩 잃거나 놓친다는 느낌을 <우리 동네 사람들> 사진에서도 어렴풋이 받습니다.

앞으로...

글을 얼추 다 쓸 무렵, 아무래도 궁금해서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여쭙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 사진을 일부러 웃는 모습만으로 모은 다른 까닭이 있는가 하고요. 출판사 연장통에서 일하시는 분은 따로 그렇게 모으려고 한 건 아닌데, 책으로 묶는 동안 "정겨운 모습"이라는 대목으로 모으게 되었다고, 꼭 웃는 모습이 아닌 다른 평범한 모습들 사진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 뒷편을 준비하지는 않는다는 말에 조금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사진책 한 권으로도 우리들 정겨운 모습과 삶을 넉넉하게 담아내고 즐기고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겠다고 봅니다.

.. 웃음을 팔자고 장에 나온 것도 아니고, 웃음을 사자고 장에 나온 것도 아닌데 장은 온통 웃음바다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이러면 안 되는' 흥정 속에 웃음은 덤이다 .. <276쪽>

덤으로 주고받는다는 웃음입니다. 그런데 참 웃음이 메마른 우리들이요, 우리들 삶이에요. 나랏일로, 또 집안일로, 또 동무들 사이에 있는 일로 웃음을 잃는 우리들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웃음을 잃는다고 느낄 때 <우리 동네 사람들> 같은 사진책을 뒤적이고 펼친다면 슬며시 우리들 마음속에 깃들거나 잠자고 있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책이름 : 우리 동네 사람들
- 찍은이 : 양해남
- 펴낸곳 : 연장통(2003.11.27)
- 책값 : 20000원

- 이 글은 제 개인 누리집(http://hbooks.cyworld.com)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 참 괜찮은 사진책인데 시중 서점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대목이 아쉽습니다. 시중 서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분들은 '연장통 출판사(02-2057-9495)'로 전화해 보시면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 - 양해남 사진집

양해남 지음, 연장통(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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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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