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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경의 <섹시즘 남자들에 갇힌 여자>
ⓒ 휴머니스트
#1. 여성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남성: 1. 남성인 사람. 사나이 2. 남성다운 사내 ¶그분이야말로 남자 중의 남자였지.
여성: 계집, 여성인 사람
¶여자가 셋이면 나무접시가 들논다 : 여자들이 모이면 말이 많고 시끄럽다는 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 여자가 한을 품으면 그 영향이 무섭다는 말. - 두산동아국어사전에서 발췌

#2. 부정적 의미일 때만 레이디 퍼스트
남녀, 부모, 자녀, 소년소녀, 신랑신부, 부부(夫婦), 장인 장모…
연놈, '어미아비'도 모르는 자식, 비복(婢僕), 암수…

#3. 청소녀는 어디에…
청소년보호법, 청소년상담, 청소년인권센터, 청소년 대상 성범죄…

<섹시즘(Sexism) 남자들에 갇힌 여자>(휴머니스트·2003)의 저자 정해경은 섹시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을 이유로 여성을 차별하는 것"

일상 언어에서 위와 같은 섹시즘의 예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성을 가리킬 때에는 그저 교사, 기자, 장관이라고 하는 것을 대상이 여성일 때에는 여교사, 여기자, 여성 장관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남학생들만 있는 고등학교는 그냥 '고등학교'지만 여학생들만 있는 고등학교는 '여자고등학교'다. 여중생이라는 단어는 곧잘 쓰여도 남중생이라는 말은 없다. 남자 중학생은 그냥 중학생이다. '여성'은 이처럼 일반적인 존재가 아닌, 뭔가 별도의 표시가 필요한 특별히 두드러진, 유표적 존재이다.

또한 여성과 관련된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단어들은 흔히 성적인 의미를 함유한다. 예를 들어 직업 여성은 직업을 가진 여성이 아니라 성매매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여성을 일컫는다. 이 외에 여자, 아가씨, 처녀, 색시, 각시, 요정 등의 말도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어에서 ‘man in the street’는 일반인을 의미하지만 ‘woman in the street’는 거리의 여자, 즉 창녀를 뜻한다. ‘woman of the town’도 마을의 여자 주민이 아닌 창녀를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언어 차별은 사투리나 흑인 영어(정혜경은 '정치적으로 반듯하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일상 영어라고 해야 하지만 편의상 흑인 영어라는 말을 쓰겠다고 전제했다)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춘향이는 남원에서 나고 자랐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춘향이는 표준어를 쓴다. 화면 속의 깡패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은 진부할 정도이다. 표준어와 달리 사투리는 자주 개그의 소재가 된다. 사투리에도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흑인 영어도 발음이나 문법 등 나름의 일정한 규칙(예를 들면 ‘r’, ‘l’을 발음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의)을 지닌다. 그러나 다만 '표준' 영어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문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열등한 언어로 치부된다.

<섹시즘(Sexism) 남자들에 갇힌 여자>는 이와 같은 비중립적 언어들의 예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언어 자체가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언어를 형성하는 이데올로기가 성차별적이며, 성차별적인 이데올로기의 언어는 또 다시 그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언어는 문법, 어휘, 표현 방식까지 남성 중심적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정해경은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생각이나 경험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불리한'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말로 표현하고 자신들의 언어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사적이고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어 온 '여성적인' 말의 가치(대화, 인정 등)를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말은 차별과 배제의 수단이 아니라 평등과 관용을 실현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그래서 언어를 통해 일상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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