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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교장의 글'과 매우 비슷한 글이 2003년 2월 2일에 등록돼 있다. 네이버 '지식인 검색'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육사교장의 글'과 매우 비슷한 글이 2003년 2월 2일에 등록돼 있다. 네이버 '지식인 검색'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 지용민
일명 '육사교장의 감동글'이 화제다. 육사교장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글은 얼마 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서 인기를 끌다 2월 6일 조선, 동아일보 인터넷사이트에 주요기사로 소개됐다. 2월 7일에는 조선, 국민 등 일간지까지 나서서 보도하고 있다.

김충배 육군사관학교 교장(중장)의 '감동글'은 김 교장이 2003년 11월 22일 교내 강당에서 생도 100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이다. 이 글은 오늘날의 풍요로운 한국이 있기까지 수고한 수많은 근로자들의 애환을 소개함과 동시에 경제개발을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육사교장의 글은 아래와 같이 '정신 못 차리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으로 맺고 있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 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이 글은 원조자금을 얻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으나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채 귀국한 박 전 대통령의 비참했던 당시를 소상히 기술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 인권탄압, 민주화 역행 등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부분은 모두 생략돼 있다. 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할 당시 현지에서 근무하던 광부·간호사 앞에서 했다는 연설은 이 '감동글' 중 백미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 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하며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육사교장의 글은 세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글이다. '육사교장의 감동글'로 소개되고 있는 이 글이 실상은 일방적인 ‘박정희 미화, 보수기득권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 ‘육사교장의 감동글’로 소개되고 있는 이 글이 2년 전부터 '원작자 미상'으로 인터넷을 떠돌았다는 점, 미심쩍은 대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서는 이 글을 미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내용을 2003년 2월에 보도하고 있는 ‘문화일보’ 기사. 내용 및 글의 전개가 육사교장의 글과 동일하다.
동일한 내용을 2003년 2월에 보도하고 있는 ‘문화일보’ 기사. 내용 및 글의 전개가 육사교장의 글과 동일하다. ⓒ 지용민
박정희는 애국자, 요즘 젊은이들은 철부지?

육사교장의 글로 알려진 이 글은 박정희에 대한 예찬과 요즘 세대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먼저, 박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 가서 당한 수모,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 울음바다가 됐던 일화 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육사교장의 표현처럼 5.16이 혁명이었고, 박정희 세력이 '혁명세력'이었나. 물론 아니다. 조선일보 등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5.16을 ‘군사쿠데타’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 5.16을 혁명이라 부르짖는 일부 언론 역시 박정희의 경제성과만 찬양할 뿐이지 그의 집권과정 자체를 감히 미화하지는 못한다.

4.19 혁명을 총칼로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 세력을 미국에서 따뜻하게 맞아주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케네디를 만나지 못해 호텔에 와서 수행원들과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에서는 ‘미화’에도 정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의 재임 시절에 달성한 경제적 성과에 대한 부분은 학계에서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논외로 하지만, 역사를 후퇴시킨 뒤 권력을 잡은 세력을 미화한 '육사교장의 글'은 총구(?)를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향하고 있다. 교통을 방해하면서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그 '자격'을 묻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5, 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 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동일한 내용이 1년 전부터 떠돌았던 '육사교장의 글'

언론에 대대적으로 '육사교장의 글'로 소개되고 있는 이 글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원작자'가 김 교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와 육사측이 확인해준 바에 따르면 김 교장은 이 글을 2003년 11월 22일에 발표했다. 그러나 이 글과 '동일한 글'이 2003년 2월 22일 '문화일보'의 데스크 시각에서 소개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 40년전 우리'라는 제목의 칼럼은 육사교장의 글과 동일하다. 또 다른 비슷한 내용은 2002년부터 검색되고 있다.

<문화일보 기사> : 외국인 노동자와 40년전 우리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박정희의 눈물'을 검색해 보면 200여개의 글이 뜨는데 가장 오래된 2003년 2월 2일자 내용은 육사교장의 글과 다름없는 내용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대목은 2003년 2월 2일자 글을 보더라도 '퍼온 글'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이 인터넷에 소개된 것은 그 이전임을 알게 해준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2003년 2월 2일에 '퍼온 글'로 떠돌아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사 교장의 감동글'을 소개하고 있는 언론에서는 원작자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김유복'과 '윤한채'라는 두 명의 이름이 원작자로 등장하는 등 언론에서도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동아닷컴에서는 "이 글의 원작자는 김 교장이 아닌 김유복(79) 현 로타리코리아 편집위원회 부위원장. 육사 7기 출신인 김 부위원장이 지난해 6월 로터리코리아에 기고한 글로써 '60대를 수구 골통이라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보렴'으로 시작된다"고 보도했다.

동아닷컴에서 운영하고 있는 '도깨비뉴스'에서는 "영상편지는 원래 윤한채씨라는 사람이 만들어 육사 철학과 교수에게 보낸 것인데 김 교장이 일부 내용을 생도들에게 맞게 수정 보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편지는 지난해 11월 22일 김 교장이 교내 강당에서 전 학년 생도 1000여명에게 강연한 내용으로, 김 교장이 교수진으로부터 전달받은 외부인사의 글을 강연용으로 보충한 것이라고 육사는 6일 밝혔다"고 두루뭉수리하게 밝힐 따름이다.

<조선일보>, '육사교장의 글' 일방적 옹호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특정인에 대한 일방적인 미화와 오늘날 젊은이들에 대한 매도로 일관하고 있는 이 글이 갑작스레 보수언론을 통해 더 급속히 전파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흥미로운 대목은 최초 육사교장의 글을 보도한 동아닷컴의 경우 <육사교장 편지 네티즌들 "감동" "더러운 글" 논쟁>이라는 제목의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데 반해 조선일보는 <육사 교장의 '편지' 인터넷 인기 폭발>는 제목으로 띄우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닷컴은 "(육사교장의 글이 소개된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네티즌들의 반응이 "감동적이다" 또는 "지나친 박정희 미화다"라는 쪽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전자의 경우 "윗세대의 모진 고생 덕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됐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반면 4일 이 글의 출처를 확인 보도한 인터넷전문 뉴스사이트 도깨비뉴스에는 "나이든 사람을 모두 수구보수세력으로 전제한 것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은 곤란하다"는 비난이 많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조선일보는 "김 교장이 강연할 당시 생도들의 분위기는 숙연했으며 눈물을 흘리는 생도도 있었다고 육사는 전했다. 육사는 강연 내용이 인터넷상에 올려진 것과 관련, 강연 내용이 좋아 학교 간부들이 띄운 것 같다며 '육사에서는 메일 등을 이용해 교수와 생도들이 자주 대화를 갖는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글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고 일방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그가 재임하던 시기의 기적과도 같은 경제성장을 높이 평가하는 국민들이 있는 반면, 인권탄압·부패·영구집권 음모·야당탄압 등의 이유를 들어 거세게 비판하는 국민들도 상당수다. 그의 기념관 건립이 지지부진한 이유도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퇴임 후 김영삼 전 대통령조차 자서전을 통해 "박정희는 부정부패의 원조다. 18년 동안 부정부패를 통해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조성했다. 영남대와 MBC.부산일보 주식을 가졌다. 나는 누구보다 그를 싫어했지만 그가 죽었을 때 야당 총재로서 빈소를 찾았다"고 좋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그가 최측근의 총탄에 의해 사망한 지도 25년이 지나고 있다. 흘렀다면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셈인데도 그에 대한 평가는 지독히 엇갈린다. 그런 그를 미화하며 반전, 평화요구 시위를 벌이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을 '철부지'로 규정하는 이 글이 지금 이 시점에 '뜨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라크 전쟁반대와 '평화요구' 시위는 미국 등 일부 참전국을 제외한 세계적인 흐름이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정작 감동받은 사람들은, 또 그 감동을 전파하고 싶은 세력들은 누구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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