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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으로 나서는 투우사의 문처럼 긴장된 순간도 없겠죠?
ⓒ 조미영

문은 시작과 끝입니다. 마주하고 있으면 시작을, 그 문을 나와 뒤돌아서면 끝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연재의 첫 주제를 '문(門)'으로 정했습니다. 미지의 문을 들어서기 전, 갖게되는 호기심과 떨림, 각오는 시작을 위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해 줍니다.

여행을 나서며 만나는 문에는 이 긴장감의 강도가 배가됩니다. 특히 해외여행의 첫 관문인 입국심사대에선 간단한 말조차 '웅웅거림'으로밖에 들리지 않으니 긴장의 강도 조절은 항시 필요합니다. 여기에 무뚝뚝하고 쌀쌀맞기까지 한 심사관을 만나면 여행의 시작이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이왕 나선 길이니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지요.

이렇게 내디딘 낯선 도시에는 또 다른 문들이 기다립니다. 숙소를 구할 때나 식사를 위해 찾아 나선 길, 많은 문들 앞에서 종종 망설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여행 책자를 참고할 때가 많지만, 가끔은 눈길을 잡아끄는 곳이 있어 멈춰 섭니다. 아담한 창문에 햇빛이라도 소담스레 들어앉으면 창가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픈 충동이 생깁니다.

▲ '샤를 드 골 광장' 중앙에 서있는 에뜨왈 개선문
ⓒ 조미영

파리에서 개선문을 보았습니다. 나폴레옹 1세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니 문은 '들고남'을 위한 목적이 전부는 아닌 듯 합니다. 하긴 우리의 옛 솟을대문이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권위의 상징이었으니 문은 그 집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 반쯤 열어놓은 울타리 밑으로 나지막이 자라는 화초를 봅니다. 그러면 왠지, 이 집엔 넉넉한 인심의 주인장이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창가에 내 놓은 화분을 볼 때면 꿈을 간직한 소녀의 마음을 보는 듯 흐뭇합니다.

반면, 높은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마주하는 웅장한 문과 빤질빤질 잘 닦인 금색회전문은 그 기세만으로도 움츠리게 합니다. "내가 들어설 곳이 아닌가?" 하는 망설임이 잠시 저를 괴롭히지요. 그래서 저는 낮은 울타리의 소박한 문과 다락방 창문 같은 조그만 문을 좋아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망설일 필요 없이 맘 편히 있을 수 있을 수 있으니까요.

▲ 이런 창가에 앉으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요?
ⓒ 조미영

▲ "똑똑똑" 대신 노크를 해주는 듯...
ⓒ 조미영

유럽의 문에는 표정이 있습니다. 동그란 창문을 달고 웃고 있거나, 삼각 고깔을 쓰고 새치름하게 서 있기도 합니다. 때론 울타리의 무성한 넝쿨이 살짝 얼굴을 가리기도 하지만, 이내 하얀 얼굴을 드러내며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키득거립니다. 이렇게 표정이 가득한 얼굴의 문에는 호감이 갑니다. 괜스레 말을 건네 보고 싶기도 하죠.

▲ 묵고 있던 민박집 근처의 가정집
ⓒ 조미영

▲ 앞에 앉아있는 인형과 비슷한 느낌의 문입니다.
ⓒ 조미영

그러나 무엇보다 문이 갖는 의미의 으뜸은 대화와 소통의 상징입니다. 반쯤 열어놓은 문을 수시로 오가며 먹거리도 나누고 근심도 나누며 정을 키웁니다. 특히, 창가 아래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를 때 창문에 발그레한 수줍음이 피어나는지, 깜깜한 침묵이 흐르는지를 파악해보면 압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문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비슷한 모양과 색상으로 입을 꽉 다물고 무뚝뚝하게 서 있습니다. 거기에 육중한 철문의 "철커덩" 소리는 섬뜩하기까지 하지요. 대화와 교류는 사라진지 오랩니다. 문은 많아졌지만, 열기 위한 것이 아닌 더 꽁꽁 닫기 위해 생겨난 것일 뿐입니다.

▲ 창문마다 내 놓은 알록달록 꽃화분은 "어서오라"흔들어 대는 환영의 손짓 같습니다.
ⓒ 조미영

▲ 인형극장과도 같은 인형가게의 입구
ⓒ 조미영

우리의 인생에도 많은 문이 있습니다. 통과하고 싶고 꼭 가야만 하는 문이 있는가 하면, 가고 싶지도 않고 갈 필요도 없는 문이 있습니다. 나와 나의 집은 어떤 문을 달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얼마나 활짝 열어놓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 뜨거운 날씨 탓인지 남프랑스에는 이런 파란색 대문이 많습니다.
ⓒ 조미영

▲ 닫혀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문, 화장실 문이랍니다.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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