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고등학교 과정과 아비투어
6년의 기본교육 과정을 이수함과 동시에 학생의 진로는 대학 진학 준비를 위한 인문계고등학교(Gymnasium) 입학이나 직업 교육을 주로 하는 직업학교(Realschule, Hauptschule) 진학으로 나누어진다. 두 가지 학제를 모두 운영하고 있는 종합학교가 있지만 직업학교 과정에 있는 학생이 인문계 과정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주 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과정을 포함 총 12년의 교육과정을 마친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아비투어(Abitur)’라고 하는 졸업시험을 치른다. 졸업시험은 대개 학교별로 실시되며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주단위의 단일한 아비투어 제도를 갖고 있는 지역도 있다. 남부의 바이에른 주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지역신문에 합격자 명단이 실리고 성적이 가장 좋은 학교가 소개되는 것을 보면 졸업시험인 아비투어가 그리 쉬운 것 같지는 않다. 각 학교별로 치러지는 아비투어는 기본 과목 두 과목(국어, 수학)과 본인이 선택한 두 과목, 총 네 과목에 대한 필기시험으로 이루어진다.
이 시험에는 낙제제도가 있어 낙제한 과목에 대해서는 한번의 구술시험 기회가 더 주어진다. 거기에서 실패하면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이러한 시험제도는 독일 대학에서도 일반적인 것이다. 몇 년 전 독일 동부지역의 한 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은 아비투어 시험에 실패한 졸업생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아비투어 성적을 수록하고 있는 고등학교 성적표와 함께 구비 서류를 원하는 대학에 제출하면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행정부서의 몫이다. 학생이 많이 몰리는 인기학과의 경우 일종의 정원제한 제도가 있어 성적이 입학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대학도 전학이 가능하다!
독일의 대학이 소수의 사립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이 연방 재정으로 운영되는 국, 공립이라 전반적으로 평준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준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전통과 역사에 비례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학과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차이는 우리와 달리, 대학의 간판과는 무관하게 어디에 어떤 교수가 있는가, 어떤 분야가 발달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대학별 수준 차이에서 우위의 것을 점하고자 우리처럼 치열한 대입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변방 지역에 살고 있는 경우라도 독일의 학생들에게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지만 그것을 당사자의 성적이나 능력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가 앞으로의 사회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다 2년 가량의 기본학업(Grundstudium)을 마치고 다른 대학으로 적을 옮기는 학생들 또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학도 전학(Hochschulwechsel)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교를 옮길 때에도 역시 중요한 것은 대학의 간판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교수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일의 각 도시마다 하나씩 존재하는 종합대학, 단과대학에는 이처럼 학교마다 전문적으로 발달해 있는 분야가 있으며 한국에 존재하는 입학생이나 지역에 따른 고착화된 서열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대학의 평준화는 자연히 지역의 평준화와도 연결된다. 도시의 크기, 인구수에 따라 지역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교육 문제를 위해, 기를 쓰고 수도에 살아야 하는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자연히, 인구밀도 증가로 인해 생기는 주거, 교통 문제 등도 발생하지 않는다. 수도라고 해서 특별히 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사 내용과는 무관한 것이지만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16개의 독일 연방주 가운데 재정자립도 면에서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모두를 위한 교육제도, 교육개혁 누가 이룰 것인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서열화 된 대학구조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일부를 제외한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오래전부터 그로 인한 폐해를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일부’가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채 문제제기에 대해 반응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형국이다.
대신 그들은 비본질적 문제인 선발 제도 등에 상당부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들도 알고 있다. 어떻게 하든 기득권에는 큰 변함이 없다는 것을. 선발제도의 수정을 통해 교육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 없이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우리의 교육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물론 현재의 서열화 된 대학의 구조에서 상부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들이 그들이 갖고 있던 기득권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그것을 포기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문제의 해결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회구성원의 몫으로 넘어온다.
사회개혁보다 더 어려운 것이 교육개혁이다. 사회개혁도 물론 쉬운 것은 아니지만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개혁은 누가 일구어 내는가. 지금까지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 개혁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개혁은 언제나 힘없는 다수의 몫이다.
내 아이들은 막 전쟁을 끝냈다고, 당장 전쟁에 참여해야 할 상황은 아니라고 멀찌감치 서 있는 한, 문제 해결은 영원히 요원하다. ‘일부’를 포함한 다수를 위한 교육개혁은 '힘없는 다수'의 길고 지루한 싸움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얼마 전 독일의 연방수상이 제기한 엘리트 대학에 대한 논의에 대해 학생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더 할말도 없겠지만 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대학 등록금제도를 도입하면서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방편으로 엘리트 대학에 논의를 꺼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까닭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