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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자 할머니(65)가 이 자리에 앉아 생선을 판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는지 묻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비바람과 함께 생선을 파는 동안 6남매는 모두 자라서 어느덧 막내딸까지 모두 시집을 가고 이제는 노부부만 남았다. 비록 크게 출세한 것은 아니지만 각자가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것을 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할머니의 하루 일과는 새벽 3시 반부터 시작된다. 새벽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어오고 다시 들어와 좌판을 정리하는 것이 오전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 출근 시간인 셈이다. 그러나 퇴근 시간은 굳이 정해놓은 것이 없다. 물건을 다 팔면 그 때가 퇴근인 것이다. 물건을 일찍 팔면 빨리 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요새같은 겨울철은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보통은 여섯시가 되면 집에 갈 준비를 한다. 퇴근 준비란 것이 물건을 정리하고 빈 바구니를 한 구석에 쌓아두는 것이 전부다. 집에 돌아가서도 그냥 편히 쉬는 것이 아니다. 자식들을 다 시집 장가 보내고 영감이랑 둘이 살다보니 살림은 또 할머니 몫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할머니의 가게는 시장에서 소문난 곳이다. 손이 큼직해 인심이 후한데다 누구에게도 정직하게 장사를 한 덕분에 단골이 상당하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어서 시작한 인터뷰를 한 시간 정도 계속하면서 여쭈어본 말이 몇 마디 안될 정도로 손님들이 분주히 찾아왔다. 말을 건네는 것을 들어보니 다들 단골인 듯싶다. 이 집 단골 10년째라는 어느 아주머니는 "이 집에 물건이 없으면 몰라도 안그라믄 딴데는 안간다 아이가" 라며 오랜 단골임을 말해주었다.
할머니 가게는 간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입소문으로 찾아온다. '어디어디 가면 생선 파는 할매가 있는데 그 집 괜찮더라' 하는 식이다. 화려한 간판이 장사의 생명이라고 여기는 세상에서는 전혀 시대에 동떨어진 방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나 할머니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장사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지 건물이나 외형이 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변한 간판 하나 없는 생선집이지만 하루 종일 손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안된다며 연신 얼굴을 가리신다.
"다 늙은 할매 찍어다가 어따 쓸라 그라노? 좀 이쁜 사람 찍어야제."
시장의 한 구석에 마련된 한 평 남짓한 공간은 말 그대로 할머니의 삶과 애환이 녹아있는 자리다. 자식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본 것도, 몸이 아파 불덩이 같은 열이 났을 때 있었던 곳도 이 자리였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할주머니에게 남은 것은 '인심 좋은 생선 할매'라는 자랑스런 훈장이다. 할머니가 자리잡은 그 시장 안 어딘가에 위치한 한 평의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마도 이정자 할머니 한 사람 뿐인 듯싶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정자 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오래도록 건강하시고 장사도 더 잘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