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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재밌다"
"크크...재밌다" ⓒ 유성호

지난해부터 큰 아이가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제법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습니다. 그때는 주로 아빠나 엄마가 찾아주는 사이트만 뒤적거리다 흥미가 떨어지면 뒤도 안돌아 보고 손을 털고 컴퓨터 앞에서 물러났습니다. 물론 마우스나 자판 등 전반적인 컴퓨터 조작이 서툴러 아빠, 엄마의 손을 빌릴 때가 많았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컴퓨터를 알아가는 한편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촌누나들이 알려 준 사이트 접속 요령을 알아서인지 요즘은 혼자서 제법 능숙하게 이 곳 저 곳을 들락거리면서 점차 사용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때문에 컴퓨터를 많이 쓰는 저와 잦은 충돌을 일으킵니다.

공룡이 나오는 사이트에 푹 빠진 아이들.
공룡이 나오는 사이트에 푹 빠진 아이들. ⓒ 유성호

최근에는 다섯 살 된 작은 녀석까지 가세해 아내를 포함한 네 식구의 쟁탈전 때문에 애꿎은 컴퓨터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만해도 형이 컴퓨터를 하고 있어도 자기 볼일을 보던 작은 녀석은 요즘은 형을 능가하는 호기심으로 컴퓨터 쟁탈 사각구도에 합류했습니다.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래봤자 만으로는 채 네 살이 안된 녀석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컴퓨터를 내달라고 윽박(?)을 지르면 어이가 없으면서도 괜히 주눅이 드는 현실입니다. 녀석의 논리는 아빠는 많이 하고 왜 자기는 못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주눅의 원인은 녀석의 논리 때문입니다.

아빠에게는 추상같은 불호령으로 컴퓨터를 내달라고 소리치던 작은 녀석도 형이 컴퓨터 하는 시간 만큼은 군소리 없이 옆에서 지켜봅니다.그도 그럴 것이 형과 연년생이다 보니 눈높이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했습니다. 어린이 집을 마치고 병원 들려 진료를 받고 온 녀석들이 한꺼번에 컴퓨터를 쓰고 있는 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요즘 녀석들은 공룡이 시리즈로 나오는 한 사이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시리즈다 보니 연결해서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가방도 맨 채 달려든 것입니다.

"근영아 재밌지?" "엉! 형아"
"근영아 재밌지?" "엉! 형아" ⓒ 유성호

"아빠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큰 아이에게 짐짓 목소리를 깔고 접근금지 경고를 보냅니다.
"아빠 많이 했잖아. 우린 하나도 않했잖아!"
언제나 그렇듯이 예상했던 반발이 나옵니다.

"어허! 아빠가 아직 써야 한다고 말했잖아."
"근영아! 아빠 깨물어!"

큰 아이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습니다. 동생에게 아빠를 물어서 쫓아내라는 말입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큰 아이의 말에 놀랄 틈도 없이 작은 아이가 팔뚝에 이를 들이대더니 사정없이 물었습니다. 참담한 현장입니다.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이 아이들 역시 그동안 아빠의 논리를 꿰뚫고 있다가 오늘은 쿠데타로 컴퓨터를 차지하자는 동맹을 맺은 듯합니다. 저는 물리적 고통과 반역에 따른 심리적 고통에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서둘러 퇴각을 했습니다.

녀석들은 얼마 전 거금 1만3000원(한달 기준)을 들여 가입한 유료사이트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제 손으로 척척 쳐서 들어가더니 언필칭 웹서핑을 하면서 컴퓨터 삼매경에 빠집니다. 공룡들이 나오는 시리즈인데 공룡이름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컴퓨터 키드 형제.(만화효과)
컴퓨터 키드 형제.(만화효과) ⓒ 유성호

거실로 쫓겨 온 저는 시계 긴바늘을 기준으로 언제까지 하라고 일러줍니다. 그러면서 녀석들의 쿠데타로 인해 컴퓨터를 찬탈당한 것이 못내 억울해 물린 상처를 보면서 마음을 쓸어 내립니다. 오늘 녀석들의 행동은 그동안 아빠의 논리를 연구한 끝에 내린 '역습'이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내일은 당장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겠습니다. 불미스러운(?) 충돌을 피하고 컴퓨터 키드의 올바른 컴퓨터 사용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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