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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오전 외출을 했다가 점심 외식을 하고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구멍난 양말들을 깁고 계셨다. 플라스틱 작은 서랍장 안에 어머니가 일일이 기운 양말들이 수북했다.

어머니는 양말들의 상태에 따라 어떤 것은 해진 부위를 이어 매는 식으로 깁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색깔이 비슷한 헝겊 조각을 덧대어 깁기도 했다.

부부가 점심 외식까지 하고 온 상황이라 아내는 멋쩍고 송구스러운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지만, 나는 고맙고도 흐뭇한 마음으로 그리하여 잠시 그윽한 눈으로 어머니의 손놀림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바느질 모습은 내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보아온 것이지만, 오십대 중반을 사는 이 세월에도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의 그 변함없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은 일단 행복한 일일 터였다.

지난 설 전에는 어머니가 내 한복 저고리의 동정을 달아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당신이 손수 바늘귀에 실을 꿰고 동정 다는 것에 비하면 양말 깁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말도 하시니, 정말이지 나로서는 보통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운 마음도 컸다. 어머니께 양말 깁는 수고까지 곱으로 안겨 드리고 사는 내 팔자가 생각하면 얄궂고도 서글픈 일이었다.

내 두 발은 정상적인 형태가 아니다. 통풍 결절로 말미암아 왼발 바깥 복사뼈가 밤톨만하게 불거진 상태고, 오른발 뒤꿈치와 아킬레스건 중간 부위가 조금 도드라져 있는 상태다.

오른발이 문제다. 뒤꿈치 위 도드라진 부분은 구두나 운동화의 뒤축 안쪽과 밀착할 수밖에 없다. 바짝 밀착해서 걸음 걸을 때마다 마찰을 겪는 상태가 되니 양말의 그 부위가 쉽게 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구멍 난 내 양말의 십중팔구는 바로 그 부위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내 양말을 기우시는 일은 나에 대한 연민과 상심을 기우시는 일이기도 할 터이다. 통풍이라는 병을 얻어 가끔 발작으로 고통을 겪고, 재발을 피하기 위해 음식을 철저히 가려먹으며 사는 아들의 고생을 지켜보시는 어머니는 내 양말을 기우실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도 크실 것이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집에서도 양말을 신고 있는 때가 많은데, 집에서는 주로 기운 양말을 신고 생활한다. 그리고 오후에 산행을 하거나 걷기 운동을 할 때는 꼭 기운 양말이 아니면 어머니가 미처 기우지 않은 구멍 난 양말을 신는다. 물론 양말을 여러 켤레나 구멍을 내고 나서부터 시행하는 일종의 규칙이요 습관이다.

요즘은 못하지만 겨울철이 아닌 때는 백화산 태을암 근처 너럭바위를 한참씩 맨발로 걷곤 한다. 한번은 운동화 옆에 벗어놓은 내 양말을 본 한 안면 있는 사람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어허, 지금 세상에두 기운 양말을 다 보겄네."
"왜, 기운 양말이 신기허게 보여서 그러남유?"
"신기허기도 허구, 이상허게 반갑기두 헤서 그류."
"그류이잉? 외려 내가 더 반가워지는 소리 같은디…."

나는 기운 양말에서 반가움을 느끼는 그 사람을 다사로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 내 주변에 그런 감정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왠지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언젠가 한번은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도 기운 양말을 신고 간 적이 있었다. 신 벗을 일이 있는 외출에는 꼭 새 양말이나 멀쩡한 양말을 신곤 했지만, 그 날은 산에 갔다 와서 미처 갈아 신지 못한 탓이었다.

그 날의 양말은 약간 색상이 다른 헝겊 조각을 대서 깁고 또 기운 범위가 뒤꿈치 쪽으로 좀 크기도 해서 남의 눈에 쉽게 띌 수 있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음식상 앞에서 조금 물러나 앉아 있을 때였다. 통풍 결절과 관련하는 불편함 때문에 두 다리의 위치를 또 한번 바꾸려니 내 발의 기운 양말을 발견한 친구가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

"요새두 꼬맨 양말을 신구 댕기는 사람이 있다나? 지 작가, 요즘 헹편이 언간히 궁헌 개비여. 아니면 천하의 구두쇠든지."

그 친구의 그 농담 때문에 여러 친구들의 눈이 내 양말 쪽으로 집중했다.

"야아, 증말루 꼬맨 양말을 오랜만이 보겄네."
"아무리 헹편이 궁헤두 집에 양말이 그렇게 읎지는 않을 텐디."
"내가 양말 좀 나눠줄까? 우리 집엔 남자가 나 하나라서 양말이 남어도는디."
"그려. 아무라두 집에 양말 여유 있는 사람들일랑 다음달 모임에 올 때 양말 한 켤레씩 가져 오너. 지 작가 주게."

"참 눈들두 밝구, 별게 다 관심이네. 꼬맨 양말두 귀허게 신구 댕겼던 옛날 소싯적을 깡그리 망각허지 않구 적당히 그리워헐 줄 아는 사람이여서 그려, 내가."

나는 이렇게 대꾸하며 아예 두 다리를 뻗었다. 왠지 내 기운 양말이 자랑스럽게도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때 좀 멀찍이 앉아 있던 한 친구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 양말, 지 작가 노친네가 꼬매 주셨을 걸. 내 짐작이 맞지?"
"그걸 워떻게 안다나?"
"우덜 또래 여자들두 지금 세상에 서방 양말 꼬매 줄 사람은 읎거든. 여자들, 안 그려?"

그 친구의 질문에 여자들의 답변은 더욱 재미있었다.

"난 바느질 헤본 지가 원젠지 물러."
"지금 세상에 서방 양말 꼬매 줄 에편네두 읎겄지먼, 마누라가 아무리 솜씨 좋게 꼬매 준다구 헤두 그 기운 양말을 신구 나설 냄편두 아마 읎을 걸."

웃음 속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좀더 오가던 끝에 내 어머니의 바느질을 짐작했던 친구가 다시 내게 말했다.

"워쨌거나 친구는 참 복 받은 사람이여. 아들 양말까지 기워주시는 노친네를 뫼시구 산다는 것, 그 팔순 노친네가 바느질까지 허실 정도루 세심허구 눈도 밝으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여. 안 그런감? 그러니께 친구는 그저 어머니가 기워주시는 양말을 기분 좋게 신구 댕겨야 혀. 그것두 효도여."

"완전히 날 효자루 맹글어 주는 소리 같은디. 암튼 고맙구먼 그려. 허허허."

나는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께 계속 양말 깁는 일까지 안겨 드리는 것은 결코 효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멀쩡한 양말을 다시 구멍 내지 않으려고 산행을 할 때마다 더욱 부쩍 신경을 썼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그 수고는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 플라스틱 작은 서랍장 안에 그득한 양말은 거의 모두 어머니가 기운 것들이었다.

"웬 헌 양말이 그렇게 많대요?

이렇게 묻는 내게 어머니는 말했다.

"이제는 애비보다 한결이가 더 양말 빵구를 많이 낸다니께. 지금은 방학 때라 들허지먼, 핵교서 어지간히 뛰어댕기구 공두 차구 그러나 벼."
"그류이잉?"

나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지난해 초에 175cm인 아빠의 키를 추월해 버린 열세 살 아들 녀석과는 벌써 오래 전부터 내 것 네 것 구분 없이 양말을 같이 신고 사는 처지이긴 하지만, 통풍 결절을 지닌 내 발보다 녀석의 발이 더 가시 돋친 양말 킬러라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두 너무 그렇게 양말을 힘들여 깁지 마세요. 아직 신지 않은 새 양말두 많을 텐디…."
"그래두 꿰매 신을 만헌 양말은 아주 못 신을 때까지는 기워 신어야 혀. 새 양말은 애껴야니께. 새 양말을 잘 애껴두면 언제든지 좋은 일에 쓸 수두 있잖겄남."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쉽게 헤아릴 수 있었다. 얼마 전 주일에 성당에서 남면 진산리에서 오시는 한 노인께 잠바를 선물하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어머니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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