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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신문배달을 마치고 집앞에서.
2002년 여름 신문배달을 마치고 집앞에서. ⓒ 안창규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여진 시'를 보면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구절이 있다.

학창시절 육첩방이 다다미를 나타내는 거라고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막상 일본 땅을 밟고 숙소를 보았을 때 그 시구가 생각나는 것은 왜였을까.

같이 온 방 친구는 한번 일본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다다미의 공포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여름이면 활발히 활동하는 다다미벌레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들은지라 왠지 다다미 위에서 잠을 청하는 게 꺼려졌다. 텅 빈 방안에 이불 하나를 깔고 누웠는데 제일 먼저 생각났던 것은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구절이었다.

60년 전에 한 부끄러움 많은 젊은 조선인이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이국땅에서 보내는 첫날 밤에 느끼는 감정은 낮선 땅에서 보낸 젊은 사람으로서 느꼈던 그 정서 그대로 일거라는 생각으로 잠시 윤동주 시인과 나를 동일시 해보았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던지라 잠시 위안이 되었다. 절대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 사람과 동일시한다는 건 좀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우상과 마주 대하는 그날 밤 첫 외국생활의 두려움을 잠시나마 지울 수 있게 했다.

바쁜 일본 생활이 시작되고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갈 무렵 경험 많은 방 친구에게 배운 것은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신문배달을 하며 생활한 외국 생활이어서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일본사람들의 꼼꼼함은 아주 유용한 생활수단이 되었다.

새벽 신문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동네 한바퀴를 오토바이로 돌고 나면 집안에 살림살이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었다. 버리는 물건이지만 아주 깨끗한 것들이 많아서 쓸 만한 것들을 추스르면 제법 괜찮은 생활용품들이 된다.

가끔 아주 친절한(?)사람은 가지고 가기 쉽게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인사말을 써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살림살이는 늘어나는데 아직 다다미를 탈출하지 못한지라 방에 깔려있는 이불을 보면서 침대생각이 간절했다.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침대보다 온돌이 더 좋았는데 건조해 보이는 다다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다다미 탈출 기회가 생겼다. 신문배달을 하며 우연히 버려진 간이식 접이침대를 발견했다. 그 침대를 보는 순간 왜 그리 기분이 좋든지 신문을 돌리면서 내내 그 침대 생각을 했다. 마지막 집에 신문을 넣고서 급한 마음을 앞세워 침대가 버려진 곳으로 갔다.

오토바이에 싣기에는 좀 큰 감이 있었지만 이런 호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토바이 뒤에 싣고 고무 끈을 이중삼중으로 둘둘 동여매고 새벽길을 달렸다.

마침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달리는 도로 위에는 큼직한 침대를 실은 오토바이 그림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그림자를 보면서 괜히 바보같이 웃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 친구에게 침대를 구했다고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친구도 덩달아 좋아하며 2층까지 침대를 옮겨주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며칠을 못 갔다. 자고 일어나면 무엇에 맞은 것처럼 온몸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완전히 다다미를 탈출한건 아니다.
완전히 다다미를 탈출한건 아니다. ⓒ 안창규
침대의 단꿈은 며칠 만에 끝났다. 다시 야밤에 원래 장소로 침대를 옮겼다. 결국 신문배달을 하는 선배가 매트리스를 구해줬다. 아직까지 그 매트리스를 쓰고 있지만 잠을 청할 때면 그때 생각이 난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는 버려진 것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내가 일본이란 곳에서 첫 외국생활을 하며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서 생활의 밑천을 삼았다는 것도 신기했고, 침대를 주었다고 기뻐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이곳에서 처음 배운 것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았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처음 다다미를 탈출하기 위해 내가 보여준 그 모습은 계속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작은 별과 바람과 시에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겸손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밤에도 바람에 별이 스치운다.

덧붙이는 글 | 안창규 기자는 현재 일본에서 신문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3월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하는 28살의 꿈많은 청년입니다. 안창규 기자 홈페이지는 gom1997.cyworld.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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