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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내 옆을 지켜주었던 69-51의 신문을 가득 실은 모습
2년간 내 옆을 지켜주었던 69-51의 신문을 가득 실은 모습 ⓒ 안창규
신문배달부로 일본생활을 시작한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신문과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오토바이 뒤에 신문을 싣고 고무 끈으로 동여매고 멋지게 달리고 있자면 갑자기 오토바이 뒤가 가벼워지는걸 느낀다. 오토바이를 새우고 뒤를 돌아보면 모든 게 암담해진다.

도로 한가운데 진풍경이 벌어져 있다. 비닐을 씌운 신문들은 나의 복잡한 마음도 모른 채 도로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다. 주섬주섬 신문을 챙기면서 많은 생각들이 난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잡생각들은 고향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 일본생활에 대한 고된 푸념, 과연 내가 계획 대로 2년을 보낼 수 있을까 따위 생각들로 이어진다. 두 달밖에 되지 않은 비가 몹시 오는 날이었다.

석간 배달을 위해 신문을 비닐에 넣고 독자들을 찾아가기 위해 보급소를 빠져 나왔다. 언덕 위 커브 길로 접어 들어섰을 때 앞에서 묵중한 충돌이 느껴졌다. 순간 그 충격으로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차안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젊은 여자가 몹시 당황해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풀 위로 떨어져서인지 하나도 다치지 않고 일어날 수가 있었는데 나를 당황하게 했던 건 그 이후였다.

괜찮냐며 몇 번을 물어보았던 여자가 내가 괜찮다는 걸 알고는 거리에 쏟아져 있는 신문을 주섬주섬 모으는 것이었다. 날 당황하게 했던 건 바로 이거였다.

비가 오는 날이고 비닐이 씌워진 신문들이라 경제신문과 아사히신문이 섞이는 날이면 분관할 수 없기에 신문을 줍고 있는 여자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신문이 바꿔서 들어가는 날이면 독자들의 항의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미안해하는 여자를 돌려보내고 혼자서 신문을 추슬렀다. 갑자기 서러움이 올라왔다. 지금 몸이 먼저인데 신문이 섞이는 걸 걱정하고 있었던 내 자신이 너무 작아졌다.

하지만 진짜 걱정은 멀쩡할 거라고 생각했던 오토바이가 박살이 나있다는 것이었다.

상처하나 없었기에 가벼운 충돌인줄 알았는데 오토바이 앞 부분이 형체가 없을 만큼 부서져 있었다. 분명 운전했던 여자도 어딘가 다쳤을 텐데 혹시 하는 생각에 도망가듯 간 것 같다.

첫 사고가 난 그 언덕
첫 사고가 난 그 언덕 ⓒ 안창규
한동안 다른 오토바이가 없어서 고장 난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을 돌렸다. 그러다 지금까지 타고 다니는 69-51을 만났다. 벌써 이 녀석과 2년이 다 되어간다.

69-51과 지내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의 생활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이 녀석이 없었으면 일본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의 밥줄이자 항상 나와 함께 해주었는데 이제 한 달 뒤면 영영 이별이다. 꼭 사람은 사람에게만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고철일 수도 있는 그 무엇이 어떤 일들을 떠올릴 때 연상 작용을 함께할 때가 있다.

나에게는 단지 69-51은 추억을 떠올리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다. 비가 와서 정말 힘들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을 때에도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었던 좋은 친구였다. 만약 한국에 돌아가 문득 69-51이 생각날 때면 지금의 생활들을 떠올리겠지.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친구다.

덧붙이는 글 | 안창규 기자는 현재 일본에서 신문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3월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하는 28살의 꿈많은 청년입니다. 안창규 기자 홈페이지는 gom1997.cyworld.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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