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의 초등학교 취학을 늦추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자녀들의 학교 내 집단따돌림과 성적 부진 등을 우려해 입학유예신청을 하고 있는 것. 서울시교육청의 자료에 따르면 1997년 3178명, 1998년 3633명, 1999년 3897명, 2000년 4632명, 2001년 7327명, 2002년 8463명으로 입학유예신청자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입학유예신청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입학유예신청의 표면적인 이유는 신체발육부진, 정서불안, 자폐증, 징병 등이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면서도 정작 그 실질적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망설였다.
“내 아이 최고 만들겠다” 욕심 부채질
현장교육자들은 학부모들의 과도한 욕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아이를 최고로 만들겠다는 학부모들의 과욕이 태교, 조기교육 열풍에 이어 입학유예제도의 혼선까지 불러일으켰다는 것.
서울 강북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구모(42) 교사는 “입학철만 되면 입학유예신청을 하려는 학부모와 그것을 만류하는 학교측과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녀들을 사설학원에 보내 완벽한 선행학습을 갖춘 뒤에 입학시키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연 학부모들의 과욕만이 문제인가. 학부모들은 교사들과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내년 초등학교 입학 예정인 딸을 둔 양현주(34·자양동)씨는 “1월생인 딸에게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한 해 늦게 입학시킬지도 모른다”면서 “한글, 속셈학원 등에서 좀더 탄탄한 학습을 시킨 뒤에 입학을 시키고 싶은 게 학부모들 대부분의 생각 아니냐”는 반문을 던졌다.
‘학원서 선행학습 학교선 복습’ 실상
왜! 이렇게 학부모들이 선행학습에 목을 매는 것일까. 학부모들은 선행학습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입학 전 선행학습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진도를 빨리 나가는 교육현장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학습 정상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그 운동이 교육청의 생색내기용 캠페인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에서 외치는 구호만 요란할 뿐 실상은 대부분 초등학교 현장에서 선행학습을 기정사실화 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혼란스러운 ‘네 탓 공방’속에서 해결책은 무엇일까. 교육전문가들은 서둘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녀들이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선택권도 없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교육현실에서 밝은 미래를 찾을 수 없기 때문.
수업방식 혁신 초등교육 정상화 해야
교육전문가들은 선행학습을 복습하는 것에 불과한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 방식의 혁신을 주장한다. 또한 학부모들의 이기심을 버리는 것 또한 입학유예제도의 혼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김정명신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회장은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뒤처질까봐’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앞서지 못할까봐’ 그러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과 학습태도 등을 객관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남의 집 아이와 비교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김 회장은 “학부모와 현장교사들의 개인적인 노력과 교육 행정가들의 조직적인 노력이 함께 어우러질 때 입학유예제도의 혼선으로 얼룩진 초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