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구조조정 전도사'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18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회의원의 드센 기를 누르고 그의 위용을 자랑해 눈길을 끌었다. 국무위원들을 호통치는 경우가 예사일 정도로 고압적이었던 국회의원들은 이헌재 부총리 앞에서만큼은 거친 표현을 삼가고 고분고분 부탁만 하고 돌아섰다.
대정부질문에 나선 일부 친기업 성향의 야당 의원들은 이 부총리를 은근히 치켜세우며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을 유도하는 등 '동료의식'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한나라당 내 실물경제통인 이한구 의원은 "경제계 선배"라는 호칭으로 말문을 연 뒤 "노무현 정부가 경제를 완전히 망쳐서 총선 패배가 확실하니 보수세력에 대한 방패막이로 일시적으로 쓸려고 초청한 케이스라고 생각된다"며 에둘러 이 부총리를 떠받들었다.
이재창 한나라당 의원은 "일자리 부족의 원인은 대기업 노조가 과도한 정규직을 주장해 신규직 채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신규인력의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임금과 고용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라며 진단이 정확한지 그리고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는지 역으로 자문을 구했다.
이어 이 의원은 여러 차례 이 부총리가 자신에 현실경제 분석에 동의를 표하다 규제완화 문제에 대한 해석에서 의견이 갈리자 "잘 가다가 여기서 나의 코드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희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가 재경부 공무원들에게 학습기간을 줄 만큼 한가롭지 않고, 아마추어의 시행착오를 받아들일 만큼 여유롭지도 못하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말을 하고 질문을 시작하겠다"며 이 부총리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같은 당 박상희 의원은 "신용불량자, 청년실업 해결하는 지름길은 전통산업과 제조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본다"는 질문에 이 부총리가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서 지원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하소연조로 당부하기도 했다.
반면, 이헌재 부총리는 '시장신봉주의자'로서의 자기 '색깔' 뚜렷하게 드러내며 현 정부의 정책을 조심스럽게 질타해 관심을 끌었다. 이 부총리는 먼저 인수위 당시의 경제정책기조부터 문제를 삼았다.
그는 "지난해 정권 초기에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진보적 학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국가의 방향이나 경쟁력, 이념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 보였다"고 평가하면서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끊임없이 합리적이며 실용적 노선을 걸었고 FTA에서 보듯 개방적이고 기업친화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노 대통령의 친기업 성향으로의 전환을 확인시켜줬다.
이 부총리는 현 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책에 대해서도 "투기를 잡는 과정에서 약간 무리한 정책이 있을 수 있다"고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고,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분양원가 공개제도에 대해서는 "임의적으로 정부가 시장 가격 이하로 통제하려하면 투기세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정부의 가격통제 정책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또 '외국인 투자 활성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스크린쿼터 때문에 한미간 BIT 체결을 못보는 것 아니냐'는 안대륜 의원의 질문에 "안타까운 일이다. FTA와 비슷하게 이 부분도 이해당사자인 영화업계에 대한 설득 작업 필수적"이라며 스크린쿼터 폐지론자쪽의 손을 들어줬다.
| | "신용불량 양산의 원인"-"규제완화 정책의 일환" | | | 신용불량자 양산 책임 공방 | | | | 이헌재 부총리와 박상희 민주당 의원의 신용불량자 양산의 책임을 놓고 공방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이헌재 부총리는 지난 99년 금감위원장 재직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제한 폐지를 주도했던 당사자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와 당시 재경부장관이었던 강봉균 현 우리당 의원을 묶어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범'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날 공방은 박상희 의원이 "카드채 부분은 부총리가 금감위원장, 부총리 재임할 때 일부 원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이 부총리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비롯됐다. 박 의원은 이어 "현금서비스 한도폐지 및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해 카드채 문제가 여기까지 오게된 원인을 제공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오해가 있는데 현금서비스 한도나 이 제도는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으로서 이뤄진 것"이라며 "카드사용의 확대라기 보다 상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세원을 양성하는 것으로서 소비촉진과는 조금 거리가 멀지 않은가 생각된다"고 해명하면서 신용불량자 '책임공방'은 싱겁게 끝이 났다. / 이성규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