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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옷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옷 ⓒ 이효연
이 옷은 처음으로 나를 엄마로 만들어 준 내 첫 아이가 입던 옷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딸을 가진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내 욕심을 채워준 우리 둘째가 입었던 옷이고,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알게 해 준 내 마지막 아이가 입은 옷이다. 중간에는 한 번쯤 내가 물려줘 친구 아이가 입고서 다시 돌아온 옷이기도 하다.

이젠 너무 많이 입어 그런가? 아무리 삶고 빨고 해봐도 목 부분의 누런 때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른 빨래 같으면 속상하련만 오히려 내 아이들의 몸 냄새가 남아있는 듯해서 다행스럽고 소중하다.

내가 저 옷을 산 때가 97년 초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아이를 배고, 앞으로 만날 아이의 옷을 사러 다녔던 날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당시는 유산기가 있어서 다니던 직장을 1년 휴직하던 중이라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던 때였다.

너무도 답답하던 터라 어쩌다 좀 돌아다녀도 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오면 좀이 쑤시던 차에 좋아라하고 가까운 곳에 쇼핑을 나가곤 하였다.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서 요것조것 앙증맞은 아이의 옷을 고르는 동안 예비 엄마의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고, 그것은 뱃속의 아이가 내게 미리 전해준 선물이기도 했다.

이 옷은 바지와 윗옷이 달려있는 순면의 흰색 우주복이다. 가슴에는 제법 예쁘장한 코사지도 옷핀으로 탈 부착 가능한 옷이다. 게다가 꽤 알려진 브랜드의 옷이기도 했기에 첫 아이를 맞는 예비 엄마의 작은 허영심을 채워주기에도 충분했다. 비록 행사매장에 있는 이월상품이었지만….

그 옷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개나리색과 흰색 한 벌씩 모두 두벌을 골라서 쇼팽 백에 주워 담았다. 아마 흰색의 것이 더 마음에 들었나보다. 노란색 옷은 누굴 주었는지 버렸는지 사실 기억에 없다.

글쎄. "이 옷에 대한 별다른 추억이라든지 특별히 할 말이 뭐냐?"고 만일 누가 묻는다면 딱히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리 그 누렇게 때가 눌어붙은 부분만 보면 가슴이 막히도록 울컥할까?

아이의 보드라운 살 냄새가 전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긴 한데 내 글이 짧아서 더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때에는 정말 나의 글 솜씨가 말할 수 없이 원망스럽다.

내 아이들이 자라온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라서 그럴까? 엄마로서 부족했던 나의 누적된 흠집을 보는 듯해서일까? 다시 만지고 볼 수 없는 아이들의 지난 순간을 안타까워 해서일까? 내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에 갖게 되는 필연적인 감상일까?

아무튼 아이 옷에서 빠지지 않는 누런 때가 나에겐 소중하다. 가만히 아이들의 옷을 코끝에 대어본다. 그리움의 감정과 섞인 아이들의 달큰한 젖내가 가슴에 전해져온다.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내 새끼들도 내 물건을 보면서 이렇게 제 어미인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면 욕심일까? 물론 이토록 내가 마음 아려하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내 아이들의 지난 시간이 담긴 찌든 때가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방송 MC 이효연의 행복일기  http://blog.empas.com/lhylhy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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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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