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경주로 이어진 국도를 따라 불국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 쪽에 괘릉(掛陵)이라는 갈색 표지판을 만나게 됩니다. ‘능을 걸다?’ 이름이 좀 묘합니다. 잠시 쉬어갈 겸 괘릉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유적지를 방문하면 늘 하던 대로 입구에 세워진 설명을 읽었습니다. 신라의 서른 여덟 번째 왕인 원성왕을 모신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성왕은 785년에 왕위에 올라 798년까지 살았으니 원성왕의 능이 맞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1200여년 전 조성된 것입니다.
이 능을 왜 괘릉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됐습니다. 무덤을 만들려고 땅을 파는데 자꾸만 웅덩이에 물이 고여 '널[棺]을 걸어[掛] 만들었다'는 전설 때문이라네요.
1200년 전의 이야기이니, ‘이 능이 누구의 무덤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정확한 설명을 듣는 것 보다 묘한 여운이 생겨 신비로움까지 느껴집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부리부리한 눈과 뭉툭한 코, 곱슬곱슬한 구렛나루를 가진 당당한 모습의 무신 두 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옵니다. 당시 서역과의 교류가 있었다고 하니 출중한 무예로 신라 왕실에 초빙돼온 서역 무사인가 봅니다. 이들을 색목인(色目人)이라고도 불렀다죠. 고고한 자태로 서있는 문신도 한 분 계시네요.
금방이라도 침입자를 향해 무시무시한 이빨을 들이댈 것 같은 사자 네 마리도 단단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름이 20미터 남짓한 능은 굵은 돌난간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능의 밑단도 단단한 돌로 둘러 놓았고, 그 돌에는 12지신상을 정교하게 돋을새김으로 조각해 놓았습니다.
그 어떤 사악한 기운도 감히 왕의 영면(永眠)을 방해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1200여년 동안 왕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저는 오늘에서야 보게 된 것입니다.
이틀동안 비가 내렸고, 괘릉을 찾았을 때도 비는 그치지 않고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괘릉은 청명한 기운을 가득 뿜어내는 소나무숲에 있습니다. 괘릉의 잔디는 촉촉하게 물을 머금고 있었고, 밤새 내린 비는 안개가 되어 괘릉 주위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