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먹과 선으로 산수를 그려내고 있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서양식 수채화 풍경 같기도 하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 풍경을 담아낸 그림은 여지없는 풍경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명 그 그림을 위해 사용된 도구들은 전통미 가득한 먹과 선들이다. 심지어 어느 작품은 추상화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다. 흔히 미술책에서 보아왔던 전통적 문인화로서의 산수화는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모양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산수화라고 하기엔 현대적이고, 수채화 풍경 같다고 하기엔 전통미가 또한 강하다.
부산 시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풍경 산수 풍경'전은 그런 면에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잠시 혼란케 한다. 제목처럼, 처음 그림을 접하는 사람에겐 "풍경? 산수? 풍경?" 하는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풍경이나 산수 딱히 어느 한가지 시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두 시점을 대강 얼버무려 볼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산수의 풍경화적인 해석, 혹은 풍경을 산수화적으로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단순히 산수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통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시각으로 우리의 전통 산수를 새로이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먹이라는 도구와 산수라는 소재는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산수화의 기본 요소를 갖추었으나 그것만으로 산수화임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산수와는 다른 구도라든지 색, 그리고 동양적 이미지는 많이 절제되어 있다.
반면, 소위 '풍경화'라고 하는 서양적인 시선 또한 그림 여기저기에 강한 흔적을 드러내놓고 있다. 마치 유화로 그려내던 풍경화를 유화 물감 대신 먹을 이용해 그린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보여주는 듯도 하다. 이렇듯 어느 한쪽 시선으로는 명쾌하게 정의될 수 없는 이 그림들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
"풍경이라는 소재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써 선택된 먹과 종이, 전통적 기법의 의미를 물어봄으로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고자 한다"는 시립 미술관의 기획 의도와 함께, 이번 '풍경 산수 풍경'전은, 분명 아직은 명쾌하게 정의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풍경.산수.풍경]전은 오는 4월 20일까지 부산 시립미술관 2층에서 열립니다.
사진 촬영을 허락해주신 부산 시립미술관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