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길고 긴 실업의 구렁으로 빠질지도 몰라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니 그동안 해왔던 꽃편지 작업이 갑자기 부끄러웠습니다. 사는 일이 이렇다 보니 편지가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이 많다는 지적도 있는데다가, 희망도 없는 노가다 주제에 꽃편지는 무슨 얼어 죽을 꽃편지냐는 회의에 잠시 꽃편지를 중단하고, 운영하던 카페의 폐쇄까지도 생각을 했지요.
설 무렵 혹독하게 추웠습니다. 그 추위처럼 우리 사는 일도 추웠습니다. 그러나 그 추위를 뚫고 어느새 봄이 오고 새싹들이 돋고 꽃들이 피어납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산과 들에 봄이 오는데 절실하게 기다리는 우리네 삶의 봄이 어찌 오지 않겠습니까? 새로 돋는 풀들과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우리들이 기다리는 삶의 봄도 저렇게 곱고 향기롭게 찾아오기를 바래보는 것입니다.
다시 꽃편지를 시작하면서 전라남도 승주읍에 있는 담터마을 뒷산에 다녀왔습니다.
고향 오가면서 보았던 마을 뒤로 해서 산을 넘어간 하얀 길이 마음에 들어서 그 길을 따라가다가 뒷산 중턱의 산밭에 다른 곳보다 꽃들이 일찍 피어나는 것을 알고 난 뒤로 자주 둘러보는 곳입니다.
광대나물, 냉이, 꽃다지, 매화, 산수유, 그런 꽃들은 어디에나 흔하게 피어나는 꽃이지만 이렇게 삶이 추운날 만나는 꽃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삶이 확 뒤집어지는 그런 봄은 아니어도 좋으니, 철근 파동도 끝나고 일거리도 끊기지 않고, 딱 그만큼의 봄이라도 왔으면 하는 바람, 노가다 주제에 이것조차 지나친 것일까요?
날 저물어 내려오는데 서쪽 하늘에 금을 그으면서 비행기가 날아갑니다. 면도날에 베인 듯이 그 하늘의 상처에서 한동안 피가 배어나오더니 곧 아물고 맙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온 삶이 돌아보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어딘가에서 나의 삶과 말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 있다면, 그의 가슴속에 남겨진 상처도 저렇게 얼른 아물었으면 좋겠습니다. 꽃이 피었습니다. 꽃편지 다시 시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꽃편지는 다음카페 <시와 사랑, 우리꽃을 찾아서(http://cafe.daum.net/kimhaehwa)>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