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간의 대결을 해소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2차 6자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예상했던 대로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기조연설에서 HEU 존재를 부인하면서도 미국과의 양자 접촉에서는 이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핵 폐기 대상에 HEU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양자 접촉에서 제안한 'HEU 논의 가능'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미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고 대안 제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은 원칙적으로는 핵 동결 및 폐기 대상에 HEU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 문제로 인해 회담이 좌초되는 것을 막기 위해 HEU 문제를 계속 논의하자는 수준에서 일단 합의하는 방향으로 북미 양측을 설득하고 있다.
결국 이번 회담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HEU 문제는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밝히고, 미국은 "HEU 문제를 워킹 그룹 등 실무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 큰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된다. 한국 정부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워킹그룹 구성' 합의 가능성 높아
이번 회담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지난 1차 회담 때 합의하지 못한 워킹그룹 구성에 대해 6개국이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킹그룹은 본 회담이 열리지 않는 기간에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를 논의한 뒤 협의 결과를 본 회담에 상정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여, 6자회담 정례화와 함께 이번 회담의 성공을 가늠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평가받아왔다.
본회담과 워킹그룹이라는 이중 구조로 6자회담이 지속되면,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6개국이 보다 심도깊은 논의와 입장 조율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정부는 워킹그룹 구성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구상중인 워킹그룹은 크게 '핵동결에 대한 사찰 실무팀', '에너지 보상 실무팀', '경제지원 실무팀' 등으로 분과가 나눠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에너지와 경제 지원을 원하는 북한과, 핵 프로그램 완전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미국 등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이번 회담 성과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HEU 문제뿐만 아니라, 곳곳에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내외 언론들이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북한이 갖고 있다는 '핵 억제력'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핵동결 의사를 밝히면서 "핵무기를 더 만들지 않으며"라는 표현을 쓴 것은, 플루토늄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더라도 억제력 차원에서 '핵무기'나 '무기급 플루토늄'은 상당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6자회담의 실패시에는 '억제력' 차원의, 6자회담이 계속 진행되면 '협상용' 및 '미국의 약속 이행을 이끌어낼 담보물' 차원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현 단계에서 북한의 '핵 억제력'을 문제삼으면서, 사찰 및 검증, 그리고 폐기 대상에 이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나올 경우, HEU 문제 못지 않게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갖고 있다는 핵 억제력이 '핵무기'인지, 아니면 무기화의 전단계인 '무기급 플루토늄'인지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미국은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북한은 '모호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핵 억제력'의 폐기는 최종단계에서 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맞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난제들은 많아... 북한의 '핵 억제력'이 그중 하나
북한의 핵동결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방안도 논란거리이다. 북한은 이미 핵동결의 상응조치로 △테러지원국 해제 △정치ㆍ경제ㆍ군사적 제재와 봉쇄 철회 △중유·전력 등 에너지 지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들 가운데 테러지원국과 경제제재 해제 및 에너지 지원은 구체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 정치·군사적 제재와 봉쇄 철회는 모호하면서도 첨예한 문제라는 점에서 이를 둘러싸고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문제삼을 수 있는 정치·군사적 제재와 봉쇄에는 미국의 선제공격 독트린 및 이를 대북군사작전으로 구체화한 새로운 작전계획(5026, 5030 등),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주한미군 전력 증강과 재배치, 핵보유국의 의무 사항인 소극적 안전보장(NSA) 등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를 문제삼으면서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북한의 안보 불안감과 미국의 의도를 볼 때 '타당성'을 갖는 반면에, 이들 정책은 미국이 동북아를 포함한 세계전략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갖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기실 이들 문제는 북한 핵문제 해결의 근본조건인 미국의 대북한 안전보장과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난제 중의 난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가능한 상응조치들은 과감하게 하되, 어려운 문제는 '우회'와 '포괄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테러지원국과 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에너지 지원 등 구체적이고 가능한 보상은 이뤄지게 하고, 정치·군사적 제재와 봉쇄의 철회와 관련된 1차 상응조치로 미국측이 제안하고 있는 문서화된 형태의 다자간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북-미, 북-일 수교 수립을 통한 교차승인의 완성 및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대체를 통해 풀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동결에 대한 최소한의 상응조치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 지원 역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러가지 논란거리가 있다. 논란거리에는 에너지 지원 주체, 지원 규모 및 시기 등이 있다.
에너지 지원 주체와 관련해 미국은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동결 대 보상' 원칙에 합의하더라도 미국이 중단한 중유 제공을 재개할 가능성은 당분간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한국·중국·러시아 등이 대북 에너지 지원 방침을 밝히고 있는데 미국이 이를 용인할 것인가의 여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는 25일자 신문에서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제안을 거부할 것 같지 않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동결에 대한 상응조치의 하나인 에너지 지원 문제는 미국이 지원 당사자로 나서지 않으면서 한국 등의 지원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에너지 지원 '시기'는 쉽게 합의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지원 카드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하는 한국 정부 역시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심각한 에너지 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즉시 에너지를 지원받아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고, 미국은 핵동결이 검증된 이후에 가능하다고 맞설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중국 등이 어떠한 절충안을 내놓을 것인지 주목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회담이후 남북관계 개선 추구해야
2차 회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노무현 정부는 핵문제를 이유로 주저해왔던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되어온 경제협력 사업을 가속화시킬 필요가 있다. 경협을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은 2차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6자회담과 남북관계라는 두개의 수레바퀴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반면 2차 회담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남북관계의 개선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6자회담 구도에서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기 힘든 상태에서 남북관계마저 위태롭게 되면,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는 호기라고 볼 것이고, 반면에 '절망'에 빠진 북한의 행동을 제어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출범 이후 노무현 정부는 대북송금 특별검사제를 수용하고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되어온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등 3대 경협사업의 본격 추진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햇볕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핵문제 해결 전에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노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해도 '현상관리' 차원에서 남북관계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관계의 개선·발전은 핵문제가 풀리는 과정에서도, 반대로 핵문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남북관계가 건실하게 발전할 때,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견인할 수 있다는 권고에 귀 기울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