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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눈높이 교육'의 바람이 대학에도 불고 있습니다. 학생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하라는 것이니, 얼른 들어서는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실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참으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개강을 앞두고 특정 강의를 담당하시는 교수님들과 강사님들이 모여 워크숍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강의를 잘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알찬 교육이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꽤 심도 있게 이루어졌습니다. 모두들 진지했고, 좋은 강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조금은 원론적이지만 많은 발전방안들이 나왔습니다. 그 내용들을 대략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리포트에 대한 꼼꼼한 첨삭 지도는 '필수'입니다. 요즘 학생들 글쓰기 수준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면서, 정기적으로 리포트를 받아서 글쓰기 연습을 시키라는 요구였죠. 최소한 A4 2장 이상의 리포트를 3주 단위로 꼼꼼하게 첨삭 지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경우 30명씩 2강좌를 맡았습니다. 결국 3주에 한 번씩 60명의 리포트를 '빨간 펜'으로 첨삭을 하고 총평을 해서 내주어야 합니다.

리포트 하나당 최소 10분에서 20분씩은 걸립니다. 얼추 잡아도 30시간에서 50시간 정도는 꼬박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루 8시간씩 할 경우 4일에서 5일은 걸리는 일이죠. 3주 가운데 한 주는 완전히 첨삭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 판입니다.

두 번째는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수업'을 하라고 합니다.

프리젠테이션은 기본이고, 동영상과 이미지를 통해서 이해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파워포인트를 다루어 본 일이 거의 없었던 강사들에게 이 문제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인문학을 전공했던 강사들에게는 이만저만 큰 숙제가 아닙니다.

물론 파워포인트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도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수업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찾아서 편집하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동영상이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한 주 수업을 위해서 2~3일은 동영상 편집과 이미지 편집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정기적인 면담'입니다.

개인이나 조별 단위로 매주 학생들과의 정기적인 면담을 통해서 발표 지도나 기타 개별 글쓰기 지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 교수와 학생간의 벽을 가능한 없앰으로써 자연스럽게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반드시 홈페이지를 운영'하라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수업용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홈페이지는 제작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관리가 더 문제입니다. 많은 학생들을 컴퓨터 앞으로 끌어내 토론을 유도하려면, '채팅'한다는 기분으로 학생들의 물음과 질의에 일일이 답변을 해 주어야 합니다. 하루 가운데 몇 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고 보면, 이 강좌를 위해서 저는 2주 동안 내내 빨간펜을 들고 첨삭을 해야 하고, 매주 2~3일씩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주당 2번 정도는 학생들과 최소 1시간 이상의 면담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루에 몇 번씩 꼭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학생들의 글에 답변을 해 주어야 합니다. 수업을 위해서 교재를 읽고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구요.

물론, 제대로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사항은 가능한 지켜져야 합니다. 이렇게 수업이 이루어지면 실제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매우 좋은 수업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죠. 이렇게 수업을 했을 경우 이 수업에서 지급되는 강사료는 한 강좌 당 대략 20만원에서 30만원 사이가 될 것 같습니다. 두 강좌를 해도 40만원에서 60만원 사이일 것 같습니다. '강의한 시간'만큼만 강의료를 받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다른 강좌도 맡았습니다. 다른 강좌 역시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위에서 말한 수준의 수업 준비를 해야 하겠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합니다. 물론 좋은 강좌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강좌를 포기하면서라도 이 수업을 제대로 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은 사람을 '이상적'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더더욱 문제는 학기 중에 연구자로서의 삶을 전혀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논문 한편이라도 쓰려면 수업을 '대충'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논문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정작 중요한 학자로서의 연구는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수준 높고 충실한 수업을 해야 하는 것도 강의를 하는 사람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동시에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해서 완성도 높은 논문을 써야 하는 것도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의무입니다. 문제는 이 둘이 결코 병행될 수 없는 것인데, 현실은 이 둘을 병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둘을 모두 제대로 못하거나, 혹은 한 쪽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문제는 '생존'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아서, 젊고 유능한 학자들이 연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겠지요.

워크숍을 마치고 나오면서 어떤 선배 강사는 옛날에 떠돌던 말에 빗대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돈이 없으니 강의를 많이 해야 하고, 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논문을 못 쓰고, 논문을 못 쓰니 교수가 못 되고, 교수가 못 되니 돈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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