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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오늘이 일요일, 교회 가는 날이지?' 난 지난밤 늦은 취침으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엄마와 강아지 '복순이'는 함께 코까지 골며 곤한 아침잠에 빠져 있다.
"엄마, 일어나. 교회 가야지. 오늘 일요일이잖아" 귀에 대고 소리를 치니 엄마 역시 떠지지 않는 눈을 힘겹게 뜨고는 "오늘이 일요일이야? 그럼 교회 가야지"라며 일으켜 달라고 손을 뻗는다. 서둘러 아침 준비하여 식사하고 약을 드시니 벌써 아홉시 반이 넘었다.
어머니 목욕 시켜 옷 입혀야지, 나 외출할 준비해야지 정말 시간이 빠듯하다. 더구나 엄마는 옷을 입혀 놓으면 내가 안보는 사이 양말을 벗어 놓는다든지 옷 위에 다른 옷을 또 껴입는다든지 하여, 시간에 쫒기는 나를 애타게 만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 늦었어. 지각이야, 지각. 빨리 하자"며 엄마의 '딴짓'을 막아보려 하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강아지 인형을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엄마의 여벌 옷에 휴지 등을 쇼핑 봉투에 쑤셔넣듯 집어넣고 집을 나서니 3부 예배 시간인 11시가 넘어 버렸다.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예배는 벌써 시작됐다.
난 여행을 좋아했다. 이곳 저곳 다니다 보니 자연과 친해졌고 그 자연 속에 있는 사찰의 아름다움도 자연스레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사찰에 가서 기도를 올린 적도 없고 불교 교리를 공부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종교를 불교로 하리라 딱히 마음을 정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괴롭고 힘겨울 때 절의 툇마루에 앉아 풍경 소리를 듣거나 촛불을 켜고 탑돌이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얻고는 했다.
오랫동안의 익숙함으로 불교에 대해 거부감이 없기도 했지만 참선과 수행을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가, 종교라는 생각보다는 스스로의 수행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관심이 가기도 하였다.
이곳 용인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난 광릉의 봉선사를 자주 갔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모처럼 쉬는 날엔, 그곳으로 가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책을 읽기도 하고 오래 전 주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쌍둥이네'집에 가서 동동주에 감자전을 먹고 오기도 하였다.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에는 야근과 철야로 그리고 갈등과 혼란으로 지쳐 힘겨울 때 야근을 잠시 멈추고 그곳으로가 달려가곤 했다. 늦은 밤에도 대웅전 안에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소원하며 수없이 절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웅전 문에 그림자 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괴로움도 함께 덜어내고는 했다.
그러던 내가 두 달 전부터 엄마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의 친정 부모님이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나 엄마는 결혼 후 불교를 믿었던 시부모와 남편인 아버지의 반대로 교회에 다니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그동안 열심히 다녔던 절 대신 셋째 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귀도 어둡고 남 앞에 그리 나서지도 않아 교회에서 특별히 사람들과 친분을 쌓지는 못했지만 주말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부터 다녀와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열심히 나가셨다. 당시 난 시간이 가능할 때면 엄마를 교회에 모셔다 드리고 차 안이나 찻집에서 기다리다 예배가 끝나면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엄마가 2000년 3월, 치매에 걸리자 교회에 다니지 못했다. 정신을 놓으시긴 했어도 교회에 가야 한다며 성경책을 찾거나 다니던 교회의 책자를 보고는 교회에 나가야 된다며 중얼거릴 때마다 엄마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난 사회 생활의 힘겨움과 직장의 특성상 주말에 쉬기 어려운 점을 이유로, 몸과 정신이 불편한 엄마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핑계로 교회에 모시고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내가 많이 힘들고 귀찮아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지난해 말, 회사에 용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백수가 된 난, 쉬는 동안만이라도 엄마를 교회에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교적 외출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친구 하나 제대로 없는 용인으로 이사 와 엄마가 얼마나 심심할까를 생각하니 교회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느 교회에 다닐 것인지 생각을 하던 어느날, 전도를 나왔다는 두 여성이 우리집 벨을 눌렀다. 예전 같으면 '교회 안 다닌다'며 박절하게 대했을 것을 마음먹은 바가 있었던 때의 방문이라 반가이 맞았다. 엄마 상태와 상황 설명을 하니 사십대의 전도사와 72세의 권사님은 엄마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만 4년만에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된 엄마는 설렘과 기쁨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잊지 않았고 찬송가도 기억하고 있었다.
주일 예배뿐 아니라 금요일마다 있는 구역 예배에도 모시고 나갔다. 우리집을 처음 방문했던 멋쟁이 권사 할머니의 적극적인 활동은 나의 결석 또한 방치하지 않았다. 덕분에 신도들의 집을 돌아가며 예배를 보며 함께 맛난 음식도 먹고 친분도 쌓았다. 교회에 다니며 사람들도 만나고 외출도 자주 하게 되니 옷에도 신경쓰고 화장도 하여 엄마의 정신적 안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편 나에게는 어려움이 생겼다. 신도도 아닌 내가 엄마와 함께 모든예배 과정에 동참하려니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또한 금요일과 일요일 이틀이나 묶여 있어야 하는 것과 끊임없이 신앙을 가지라는 요구를 받는다는 점이 나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한편, 우리나라의 종교가 지나친 기복 신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관심이 없었던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도 하게 되었다. 어떤 종교든간에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이 신에 대한 기원이기도 하지만 반복된 기도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세뇌'하는, 그래서 이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신들 역시 원하는 바를 위해 기도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부단한 노력이 있을 때만 그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나도 간절히 원하고 기도해 보려 한다. 이젠 나를 동생이라며 가끔은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금보다 나빠지지만 않게 해 달라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나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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