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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의 신작 장편 <야살쟁이록>

ⓒ 우리교육
비슷한 또래의 인간들에게 동시대를 함께 살아냈다('살아온' 아닌)는 것은 은근한 동지의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6·25를 다룬 소설이 자연스런 고개 끄덕임을 주고, 언필칭 386들에겐 청승맞고 퇴행적인 후일담 소설마저도 가슴 아린 추억을 반추하는 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70년대 초반에 태어나 87년 6월 항쟁 당시 열 일곱 철모르는 소년이었고, 고등학교 3학년이던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결성한 '그 착한' 교사들이 무지막지한 백골단에게 멱살을 잡힌 채 교실 밖으로 개처럼 끌려나가는 걸 안타까운 눈망울로 지켜봐야만 했던 세대들에게 김종광의 신작장편 <야살쟁이록>(우리교육)이 주는 울림은 크다.

1971년에 태어나 위에 언급한 사건들을 겪으며 중·고교 시절을 보낸 김종광은 동년배의 작가들 대부분이 몰역사성과 비현실성에 휘둘리는 괴이한 21세기 문학환경 속에서 그 역시 71년생 작가인 김윤영과 함께 드물게 '리얼리즘'의 깃발을 지켜내고 있는 소설가다. 게다가 그의 리얼리즘의 속에서 날것으로 파닥이는 '풍자'의 힘이라니.

<야살쟁이록>을 통해 "오늘날 한국엔 4·19세대와 6·3세대, 민청학련세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세대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는 김종광은 자신의 10대 체험을 담담히, 때로는 격정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같은 세월을 살아온 30대 초·중반의 독자들을 '아무 것도 몰랐기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로 데려간다.

짤짤이(동전으로 하는 노름)와 수음(김종광식으로 표현하자면 '딸딸이'), 갈래머리 여고생을 보며 설레던 가슴과 부족한 재능으로 만든 어설픈 문집(文集), 괜한 염세주의와 세상에 대한 서툰 관심으로 점철됐던 고교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야살쟁이록>를 읽는 맛이 각별할 듯하다.

지난 주말 마지막 책장을 덮고 동갑내기 김종광에게 전화를 넣었다. "잘 봤다. 근사하더라"는 인사 뒤에 그가 걱정을 전한다. "출판사가 우리교육이라 청소년소설로 오해되지 않겠냐?" 그의 소설 속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 답으로 돌려주었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에 고교생이 나온다고 그걸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는 바보들이 있더냐."

밥은 눈물이며 웃음...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 한길사
<강철군화>의 작가 잭 런런은 일찍이 말했다. "내장을 채우기 전엔 결코 영혼을 채울 수 없다." 적지 않은 결식아동과 하루 한끼로 연명하는 독거노인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그 말이 가진 효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밥이란 언제나 인간에게 눈물 혹은, 웃음이었다.

최근 출간된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한길사)은 바로 이 밥과 관련된 '눈물'과 '웃음'의 기록이다. 기록자로 나선 사람들은 예술가들. 원로소설가 박완서와 최일남에서부터 30대 만화가 고경일, 인사동을 설계한 건축가 김진애까지 다양한 층위의 세대들이 들려주는 '밥'에 얽힌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즐겁게(?) 눈물겹다.

책에서는 한끼 밥을 위해서 땡볕 쏟아지는 무논에서 종일 피를 뽑았다는 여성 소설가의 술회와 중년 남성시인의 커피호사가 교차한다. 똑같은 나라에서 비슷한 시기를 살았다해도 각자가 겪은 체험이야 천차만별인 법. 이처럼 먹고사는 것 하나에도 고락과 희비가 교차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소설처럼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진짜 원조 묵밥집'을 소개해주는 성석제와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과 호암 문일평까지 인용하며 '조선 최고의 음식은 개성 탕반과 평양냉명, 전주 골동반(비빔밥)'이라 설명해주는 기자 출신 작가 최일남의 친절이 고맙다.

좌익의 아들이 쓴 반전소설...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

ⓒ 이룸
한다하는 문인들 중에는 좌익 아버지를 둔 사람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다시피 <만다라>의 김성동과 <관촌수필>의 이문구(2003년 타계)는 각각 남로당 충남도당과 보령군당 고위간부의 아들이었다.

<사람의 아들> <변경> 등을 상재한 작가이자 우익 이데올로그인 이문열의 부친은 영국유학을 마치고 서울대에서 근무하다 월북한 인텔리 코뮤니스트. 소설가 김원일의 아버지 역시 남로당 경남도당 부위원장과 재정위원장을 지낸 좌익의 지도급 인물이었다.

이들이 원죄처럼 안고 살아야했던 '좌익 아버지'는 그들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질문에 일정부분 답할 수 있는 작품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가 이룸출판사에 의해 재출간됐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겨울 발생한 거창양민학살사건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큰 악이며, 또한 그 거악(巨惡) 앞에 선 인간이란 얼마만큼 왜소한 존재인지를 들려줌으로써 '반전'이라는 절대선의 가치로 사람들을 이끄는 김원일의 저력이 느껴지는 <겨울 골짜기>. 김원일은 이 작품에서 지난 시절 우리가 '빨갱이'라고 비하해 부르던 빨치산들까지도 결국은 '야수 같은 전쟁의 희생양'으로 포옹하고 있다.

87년 첫 출간 때부터 작가와 작품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위에서 획득한 휴머니즘 하나만으로도 <겨울 골짜기>의 미덕은 넉넉하다. 아버지의 그늘을 마냥 그늘만으로 끝내지 않은 노장 김원일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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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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