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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른바 '청와대 386 그룹'의 대표주자였던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이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이씨는 3일 지인들에게 총선 출마를 알리는 e-메일을 보내 열린우리당 예비후보 경선을 통한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씨가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예상은 국정상황실장을 그만둘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썬앤문 그룹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측근비리 특검의 조사를 받았고, 고향의 지역구도 통폐합되었기 때문에 출마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번에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자연인 이광재' 앞에 놓인 첩첩산중

이광재씨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전문

(다음은 3일 이광재씨가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으로, 특별한 제목은 없다....편집자 주)

이광재입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얼마전까지 산에 있는 낙엽과 눈을 원없이 밟아 보았습니다. 자연의 치유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고, 산과 나무와 돌과 냇가를 절실하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해 보았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했습니다.

선거나 지역구 관리가 쉬운 수도권이나 원주 대신 고향을 선택했습니다. 영월, 평창, 정선, 태백, 서울면적의 7배. 흥청거리던 탄광지대가 폐허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농촌의 농민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대학시절 야학할때, 막노동하고, 주물공장을 다닐때 가졌던 그 어떤 책임감과 절실함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치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제가 묻힐 아름다은 이곳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해보려 합니다. 선거준비도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경선준비는 더 부족합니다.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심한 이상 남자답게 깨끗한 경선을 통해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경선에서 현역의원, 그리고 본선에서 현역의원 2명 결과적으로 현역의원 3명을 이겨야 국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힘들지만 어렵지만 어려운 선거에서 이겨서 제 마음속에 있는 아픔을 태워버리고 용광로처럼 일하다 살다가고 싶습니다.

강원도가 한강을 만들고, 낙동강이 시작됩니다. 저도 이곳에서 새로 시작해 보려합니다. 담백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그러나 최선을 다해 보려합니다.

항상 애정과 염려를 보내주셔서 늘 감사했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저, 많이 도와주십시오. 일일이 찾아뵙지 못하고 글로 대신합니다.

2004년 3월3월 이광재 올림
이씨는 청와대에서 나온 지난해 가을부터 자기 자신과 많은 대화를 했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이 메일에서 밝혔다. 그러나 한때는 청와대 안팎에서 '최고 실세' 소리를 들었던 이씨의 앞길에는 '자연인 이광재'로서는 힘겨운 장애물들이 적지 않게 놓여 있다.

이씨의 고향은 강원도 평창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그 첩첩산중의 평창이다. 그 앞에 놓인 정치역정도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우선 고향의 지역구(영월·평창)가 인근 태백·정선과 통폐합되는 바람에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선거전이 예상된다. 선거구 획정에 의해 강원도의 경우 지역구가 9석에서 8석으로 줄었는데 해당지역이 바로 이씨의 선거구인 것이다.

이씨 자신도 영월·평창·정선·태백지역은 서울 면적의 7배로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선거나 지역구 관리가 쉬운 수도권이나 출신고가 있는 원주 대신 고향을 선택했다면서, 그 배경을 "흥청거리던 탄광지대가 폐허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농촌의 농민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대학시절 야학할 때, 막노동하고 주물공장을 다닐 때 가졌던 그 어떤 책임감과 절실함이 생겼다"고 밝혔다.

지역구만 넓은 것이 아니다. 당장 예비경선 때부터 현역의원을 상대로 힘든 경쟁을 해야 하며, 예비경선을 통과하면 본선에서도 다시 현역의원을 상대해야 한다.

현재 영월·평창의 현역은 김용학 한나라당 의원이지만, 태백·정선의 현역은 김택기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따라서 본선에 나서려면 우선 강원도에 기반을 둔 동부그룹 경영자 출신의 김택기 의원과 힘겨운 예비경선을 치러야 한다.

그는 "선거준비도 못했고 경선준비는 더 부족해 어려움이 많지만 결심한 이상 남자답게 깨끗한 경선을 통해 시작해보고자 한다"고 출사표를 밝혔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측근' 시절에는 '최고 실세'였지만, 야인이 된 지금 열린우리당에서 그를 지원해줄 인적 네트워크는 거의 없다.

이기명 전 노무현 후보 후원회장이 이씨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지만, 결국은 자신의 혼자 힘으로 경선을 통해 살아남는 것밖에는 사실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20%대로 떨어진 데다가, 노 대통령이 자신의 '동업자'로까지 표현했던 '386 그룹'의 잇단 대선자금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어 당에서조차 이들을 부담스러워하는 만큼 경선을 지원해줄 리가 만무하다.

일진 사나운 '출사표' 택일

지난해 12월 14일 밤 서초동 대검찰청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있는 안희정씨.
지난해 12월 14일 밤 서초동 대검찰청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있는 안희정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씨는 출사표에서 "강원도가 한강을 만들고 낙동강이 시작됩니다, 저도 이곳에서 새로 시작해 보려합니다"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강원도의 힘'을 호소하며 출마의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그러나 택일의 일진부터 사납다. 그가 출사표를 던진 3일, 대검 중수부는 한때 청와대 밖의 '최고 실세'였던 안희정씨(구속)가 지난 대선 때 롯데로부터 5∼6억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그 전날 소환한 여택수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이 지난해 청와대 근무시절에 롯데그룹으로부터 3억원을 받아 일부 유용한 혐의를 포착해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취임 직후 가진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한 검사가 '노 대통령은 83학번'이라고 표현할 만큼 안희정·이광재 두 사람은 노 대통령의 막역한 '동지'이자 '동업자'였다. 오죽했으면 각각 고려대·연세대 83학번인 두 사람을 '노무현의 좌희정 우광재'라고 했을까.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후에 대기업으로부터 건네받은 일종
지난해 5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이야기하고 있는 여택수 당시 제1부속실 행정관(오른쪽)과 이광재씨.
지난해 5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이야기하고 있는 여택수 당시 제1부속실 행정관(오른쪽)과 이광재씨. ⓒ 연합뉴스 박일
의 '당선 축하금'을 "향토장학금을 받는 심정으로 받았다"고 말한 안희정씨가 기업으로부터 모금한 불법자금은 밝혀진 것만 20억원에 이르고 있다.

안희정씨의 대학 2년 후배인 여씨는 안씨의 소개로 97년부터 노무현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후 98년 보궐선거와 2000년 4·13총선에서 노 대통령을 위해 일했고, 2002년 2월부터 노 후보의 수행비서를 맡아 노 후보를 24시간 보좌하는 '손발'이 되었다.

청와대 입성 후에도 그의 생활은 후보시절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일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밤 11∼12시 사이에 귀가하는 식으로 하루 16∼18시간 노 대통령을 위해 일하고 개인생활은 포기하는 등 헌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노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밀착 마크하면서도 입이 무거워 대통령으로부터 "가까이 두고 일을 맡길만한 사람"이라는 두터운 신임을 받은 여씨는 썬앤문 그룹으로부터 받은 3천만원 말고도 롯데로부터 3억원을 받아 2억원을 안씨에게 전달하고 1억원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광재가 넘어야할 '진짜 산'... 안희정·여택수

두 사람의 도덕성이 문제되는 것은 안씨는 나라종금 비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 가운데서도 기업으로부터 '당선 축하금'을 받았고, 여씨 또한 청와대 제1부속실의 선임행정관으로 재직중에 '당선 축하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부도덕한 점은 그러고도 지난해 12월 썬앤문에서 받은 3천만원이 불거졌을 때 사표를 내지 않고, 어제 검찰수사에서 발견될 때까지 3개월이나 노 대통령 곁에서 숨어온 점이다.

어쩌면 출사표를 던진 이광재씨가 넘어야 할 가장 큰산은, 산 넘어 산인 강원도의 드넓은 지역구와 예선·본선에 줄지어 선 현역의원들이 아니라, '청와대 386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평가인지도 모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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