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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에 재직할 당시인 지난 2001년 3월 25일자로 대한매일 홈페이지 '기자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은 당시 필자가 일본 <산케이신문>이 김중배 MBC 사장이 정부의 인사간여로 MBC 사장에 선임됐다고 보도해 물의를 빚은 사실을 계기로 쓴 것으로, <산케이>는 이전에도 한-일관계, 남-북관계를 저해하는 보도로 한국민들의 비난의 사 왔었다. 지난 2일 곡절 끝에 16대국회에서 '친일진상규명법'을 통과됐는데 <산케이>는 이를 두고 '친북' 운운하며 또다시 왜곡된 보도로 한국민들의 자긍심을 손상시키고 있다. 과거 <산케이>의 추악한 과거 보도사례를 고발하기 위해 이 글을 다시 소개한다. 참고로 원제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을 폐쇄하라'다...편집자 주)
MBC는 지난 21일 열린 임원회의에서 일본의 극우보수 신문인 ‘산케이’ 신문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키로 결의하고 만약 산케이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하기로 결의했다. 국내 신문간에 보도내용을 놓고 정정보도를 청구하거나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는 사례는 그동안 더러 있어 왔으나 주한 외국언론에 대해 국내 언론사가 정정보도를 청구한 경우는 드문 일이다.
MBC가 문제삼고 나선 것은 산케이의 20일자 5면 머리기사. 이날 산케이는 ‘한국언론 끝없는 진흙탕 싸움-정당,TV,신문이 고소 공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중배 MBC 사장 선임을 언급하며 “실질적으로 정부가 인사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MBC의 사장에 최근 한겨레신문 사장 출신인 진보파의 김중배씨가 기용돼 화제가 됐다”며 “김 사장은 대통령과 동향인 전라도 출신이며,김대중 정부는 정권 말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매스컴 장악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선 이 기사는 사실과 다른,엄연한 ‘왜곡기사’다. 왜냐하면 김 사장의 MBC 사장 선임을 놓고 당시 방송가에서는 ‘방문진의 혁명’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변’으로 받아들여 졌기 때문이다. 청와대측도 당일 방문진의 이사회가 끝나고 나서야 김 사장의 선임결과를 보고받고서 당황해 했다는 후문이다.
또 당시 방문진의 이같은 움직임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MBC담당 국정원 직원이 직후에 교체된 것도 이같은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치 정부가 김중배 사장의 MBC사장 선임에 관여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60)기자는 주한 외국언론인 가운데 대표적 ‘한국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출신으로 수 십년간 한국에서 취재했으며,언론계는 물론 국내 각계에 광범위한 인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구로다가 “외신기자들 사이에 나도는 얘기를 듣고 기사화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얘기다. 구로다는 자신의 기사가 문제가 되자 “(MBC측이)서면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오면 정정보도 게재여부를 검토할 생각”이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구로다 개인도 문제지만 그가 소속된 산케이는 한국(인)에게 참으로 해를 끼치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화해무드가 진전되면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자 이를 딴지걸고 나선 대표적인 언론이 바로 산케이신문이다. 일본내 극우진영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부추겨온 집단도 바로 산케이다. 한마디로 한국이 잘되는 것은 도저히 못참겠다는 고약한 심뽀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산케이는 ‘조일(朝日)교섭-융화무드에 현혹되지 말라’ 등의 기사를 무더기로 실어 왔다. 특히 구로다는 지난해 일본 잡지 ‘SAPIO’(8월호)에 기고한 ‘김정일 열풍은 한국정부 언론통제의 산물이다’라는 글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은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며 남북화해 무드에 딴지를 걸고 나섰다.산케이신문은 겐다이(現代)코리아그룹 등과 함께 일본내 대표적 반통일·반북집단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 한일 양국간에는 2002년도 일본 중학교용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놓고 극도의 갈등을 겪고 있다. 문제의 왜곡 교과서를 만든 곳은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황국사관을 바탕으로 한 극우주의자들의 모임이다. 문제는 산케이가 이들의 주장,활동을 장기간 홍보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진보신문인 아사히신문이 이들의 주장을 ‘역사왜곡’이라며 조목조목 비판하자 산케이가 나서서 이들의 주장을 변호하면서 아사히측과 대리전을 펴기도 했다. 산케이는 지난 2월 24일자에서 아사히의 주장에 대해 ‘(역사교과서)검정에 압력을 가하려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는 “검정중인 특수교과서에 대한 아사히의 비판은 검정 불합격을 기대하는 내용이어서 규칙위반 혐의가 짙다”고 주장했다.
국교를 수교한 국가끼리는 상호 대사관을 두거나 더러 자국의 기자를 상대국에 주재시키곤 한다. 이들은 주재국에서 일종의 치외법권적 특혜를 누리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한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주재국의 관습·법규를 존중하면서 상호신뢰·이익 추구라는 신사협정에 근거하고 있다. 만약 어느 한쪽이 이같은 규칙을 어겨 물의를 일으킬 경우 주재국은 상대국의 대사관이나 언론사 지국을 폐쇄하고 관련자를 추방시키기도 한다.
실지로 70년대초 그런 경우가 국내에서 있었다.지난 72년 한국정부는 ‘주간 요미우리(讀賣)’가 (9월 10일자) 별책부록(‘주체의 나라 조선’) 특집호 권두언에서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화한 반면 한국을 의도적으로 비방했다며 요미우리 서울지국을 폐쇄시킨 바 있다. 당시 언론 주무부처인 문공부는 “대한민국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요미우리신문의 국내배포 금지 및 지국폐쇄 명령을 내렷으며, 요미우리 주한특파원에 대해서도 10일까지 출국하라고 명령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요미우리는 문제의 별책을 자진 회수하였으며, 하라 요미우리신문 부사장이 주일한국대사관을 방문,정식 사과하였고, 9월 30일자에서 1개면을 할애해 사과문을 실었다. 요미우리의 국내취재가 허용된 것은 지국폐쇄로부터 70일이 지난 뒤였다. 이는 하라 부사장과 시마모토 기자가 내한,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와 윤주영 문공부 장관을 방문, 정식 사과하고 앞으로 한일 양국의 친선과 이해증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뒤였다.
이제 이 글의 결론을 맺겠다.필자는 우리정부가 산케이 서울지국을 폐쇄할 것을 촉구한다. 산케이는 수교국에 대한 기본 예의는 커녕 남북문제,역사교과서 문제, 독도문제 등 한일 양국의 관심사가 모아지는 주제 모두에서 악의적 보도태도로 일관해 왔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관계 당국이나 지성계에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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