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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오늘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의해 발의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자민련까지 가세한 다수 야당들의 합작에 의해 가결된 날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거대 야당에 의한 의회 쿠데타가 '성공한'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황당한 날이고 슬픈 날이다. 오늘을 일러 '국치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렇다. 오늘은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날이고 불행한 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쁜 날이다.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의 씨앗이 뿌려진 날이다. 변화와 개혁의 도약대가 놓여진 날이다. 놀랍고도 오묘한 탄력이 내재된 디딤틀이 드디어 작동을 시작한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기쁜 날이다.
어제(11일) 저녁 국회의 여야 대치 상황이 첨예하게 진행되던 그 시간에 나는 태평한 마음으로 동네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초등학교 동창들의 친목모임에 참석해서 돼지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먹었다. 긴장하고 분노하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나 자신을 위안하고 격려했다. 더없이 차분하고 태평한 나 자신이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나는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하루 쉬었다가 숨을 고르고 나서 경호권을 발동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소속 의원들의 이탈표를 방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본래부터 역사에 대한 성찰과 책무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지닌 작은 잣대와 기득권 수호와 오늘의 이익이 모든 가치의 전부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탄핵안이 가결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오히려 그것이 차라리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20여명 정도의 동창들이 모였다. 비교적 보수적인 체질을 안고 살아가는 오십대 후반의 친구들은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시며 국회의 대통령 탄핵에 관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았다. 그들의 평소의 시각이 조금씩은, 또 어떤 친구는 180도로 달라져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가운데에 앉은 이동규 회장이 화제를 주도했다. 그의 말은 논리 정연했다. 도대체 온몸에 '똥투갑'을 하고 있는 것들이 대통령을 탄핵할 자격이 있느냐, 대통령 탄핵 사유가 정당한 것이냐, 검찰로 하여금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하게 해서 정치권의 비리를 척결해나가는 일을 문제삼아 탄핵을 하는 것이 차라리 더 솔직한 일일 거라는 그의 이야기에는 해학이 있었다. 그의 이런 논법에 거의 모든 동창들이 동의를 했다.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되었다.
오늘,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상황을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다가 나는 고장의 문학회원 몇 분과 함께 안흥에 갔다. 한 친구가 신진도에다 건물을 짓고 생선횟집을 개업해서였다.
당연히 화제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대한 이야기였다. 50대 초반 여성 시인 문영식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문학회 부회장인 60대 초반의 손명환 시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는 비겁한 타협이라고 했다. 명명백백한 사과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탄핵을 면하기 위해 사과를 한다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문제의 불씨를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생선횟집을 개업한 법무사 친구가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전화위복이 될 거라는 말을 했다. 오늘의 이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폭넓은 성찰이 빚어낸 일이라고 말했다. 확실하고 분명한 변화와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사 발전의 힘찬 탄력을 만들어내는 어떤 계기가 필요한 법이라고 했다. 오늘의 이런 사태는 필연적으로 많은 국민들의 생각의 골을 넓혀주고 분별의 힘을 키워주는 작용을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엔 역사 발전의 탄력으로 승화될 것이라고 했다.
"역사의 물굽이가 진정한 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획기적인 사건이 필요한 법인데, 그것을 묘하게도 처음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수구 부패 세력이 만들어주었을 뿐입니다. 이 사실에는 참으로 묘한 역설과 아이러니가 숨쉬고 있지요. 우리는 이 역설과 아이러니를 느끼고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놀라운 작용을 일으키게 되니까요."
나는 이틀 동안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체질을 안고 사는 장년층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각을 통해서 뭔가를 느낄 수 있었고, 전화위복에 대한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의 이 어처구니없는 슬픔을 디딤돌로 삼아 노무현 대통령은 새로운 역사 창조의 대 전기 앞에 서게 되었음을 굳게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저녁에는 고장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 모임에 가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 젊은 친구들 속에서 나도 덩달아 젊어지면서 나는 좀더 확실한 희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거대 야당에 의한 '의회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박관용 국회의장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일갈했다. 왜 이런 일을 자초하느냐, 자업자득이라는 얘기였다. 참으로 오묘한 변설이었다. 박관용 의장의 무책임함과 비좁은 사유의 폭을 그대로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일단 그의 말은 맞다.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 모두 오늘의 사태가 자업자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업자득은 오늘 당장의, 그리고 아주 좁은 범위 안에서의 자업자득이다. 그 말은 머지 않아 그대로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되돌려질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 야당 의원들이 나누어 마시는 오늘의 축배는 머지 않은 훗날 그대로 박관용 국회의장을 포함한 모든 거대 야당 국회의원들 모두에게 자업자득이요,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또 머지않은 훗날엔 용케 모면을 하더라도 민족의 정기가 함께 하게 될 역사에서는 반드시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역사는 발전의 법칙을 안고 가는 것이므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역사 발전의 중심에 서 있으므로…. 또 역사 발전의 흐름은 지금도 힘차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물론 오늘 승리의 축배를 드는 자들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오늘은 일단 슬픈 날이다. 하지만 기쁜 날이기도 하다. 민족 정기의 갈기를 새롭게 세우고 가다듬을 수 있게 된 날이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기뻐해야 한다. 우리의 밝은 미래와 역사 발전의 대법칙을 신뢰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은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것은 결코 불명예가 아닌, 오히려 역사의 명예가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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