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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 되던 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내 마음은 국회의사당에 가 있었습니다. 머리털 나고 이토록 국회의사당에 눈과 귀를 고정시킨 적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다녀왔습니다”할 때도 본체 만체했고 마당에서 아내와 막내 동생이 집수리로 낑낑거리고 있을 때도 방안에 틀어 박혀 텔레비전만 보았습니다. 국회의사당을 향해 돌진 하던 자동차가 불타 오르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2 월드컵 이후 거의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독점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저녁 9시 무렵, 각 방송사에서 일제히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고자세로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빤한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반대 70%' 예상했던 여론조사 결과를 확인하면서 나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 <오마이 뉴스>의 <조선·중앙·동아의 뒤늦은 '나라걱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조·중·동에서 내놓았다는 사설 몇 구절을 접했습니다.
방송 시청을 통해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게 어떤 기준으로 정해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라는 사람들 대부분의 말과 조·중·동의 사설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번 탄핵 정국을 ‘법대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식구들이 잠든 고요한 야밤에 내가 내린 결론도 그들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는 다른 어투로 아이들 때문에 내내 꾹꾹 눌러 참았던 욕지거리를 섞어서 혼잣말로 “그래 좋다, xxx들아, 법대로 하자!” 중얼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저명 인사’들이라서 점잖게 말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나는 그들처럼 점잔을 떨지 못했습니다. 국회의원들과 함께 탄핵정국으로 몰고 왔던 조·중·동, 그들의 사설을 읽다가 문득, 영화 속에서 법 운운하는 조직폭력배, 사기꾼들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의 사기꾼들이나 조직 폭력배들은 처음부터 법을 운운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죄 없는 사람 왜 잡아 왔냐고 인상을 박박 써가며 형사들에게 대듭니다. 문신 새겨진 팔뚝을 거둬 붙이고 당당하게 형사들을 몰아붙입니다. 왜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 족치는가, 거칠게 반항을 해봅니다. 하지만 하나 둘씩 죄목이 밝혀지기 시작하면 꽁지를 내리고 한마디 툭 던지는 고정 멘트가 있습니다.
“법대로 합시다.”
법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법 지식은 이렇습니다. 가정 일이나 이웃 간의 마찰 등, 어떤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마지막 카드로 쓰이는 게 법이라고 봅니다. 인간적인 도리를 따져 보다가 어쩔 수 없이 찾는 게 법이라고 봅니다.
나처럼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법정싸움을 벌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간적인 도리를 먼저 따집니다. 법을 찾아가는 것은 최후의 선택입니다. 이럴 때 법은 어떤 의미에서 좋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사기꾼들이나 조직폭력배들이 궁지에 몰린 끝에 나오는 “법대로 합시다“에서의 법과는 분명 질적으로 다릅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조직폭력배들이 말하는 법은, 법을 지혜롭게 활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이용, 악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도리나 진실성이 없습니다.
헌데 70%의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반대하고 있는 오늘 이 시점에서, 탄핵정국을 주도해온 조·중·동의 ‘법대로 하자’는 말들이 조직폭력배들의 꽁지 내린 궁색한 말로 들립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들의 말과 사설이 진실성 없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탄핵 정국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데 큰 몫을 해왔던 자들이 나라를 걱정한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렸지만 그게 국민들에게 통하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법대로 하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온갖 협박과 폭력을 휘둘러 놓고 궁지에 몰리자 ‘법대로 하자’는 조직폭력배들처럼 말입니다.
조·중·동에 비하면 차라리 조직폭력배들의 법 운운은 순진하기만 합니다. 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법대로 하자며 큰 소리 탕탕 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어 웃고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중·동의 ‘법대로 하자’에서는 웃음이 나오질 않습니다.
법대로 하자? 좋은 말입니다. 대통령 탄핵가결로 분노하고 있는 국민들 역시 조·중·동의 사설처럼 얼마든지 법대로 하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함부로 법을 운운하지 않고 있을 뿐지요.
조직폭력배들이 나오는 코메디 영화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직폭력배가 인상을 박박 쓰며 ‘법대로 합시다’라고 말할 때 형사들의 고정 멘트가 있습니다.
“그래, 이 xx야, 너 잘났다, 그래 어디 법대로 한번 해보자.”
대통령 탄핵가결에 분노하고 있는 국민 중에 한 사람인 나 또한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독재 정권시절에 써먹었던 케케묵은 국가안보 논리와 진실성 없는 법을 내세워 탄핵가결을 반대하고 있는 나를 옭아 매려 하는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 좋다, 어디 한번 법대로 해보자! 법대로 하자는 놈들, 하나도 안 무섭더라.”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반대하는 든든한 국민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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