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이젠 거의 만성화되다시피 했다. 그곳에서 걸핏하면 일어났다는 자살폭탄 테러와 이에 대한 보복공격 뉴스조차, 하도 흔해서인지 몇 명 죽고 다쳤느냐 외에 더 이상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단조로운 소식만 접해서는 팔레스타인이 왜 그리 날이면 날마다 소란스러운지를 우리로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에 대한 종교적 인종적 편견까지 곁들여지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기질 자체가 원체 과격한 테러리스트의 피를 타고난 것처럼 보일 때가 적지 않다.
그런데 조 사코의 만화 <팔레스타인>은 막연하게만 알아왔던 팔레스타인에 관한 진실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아주 유익했다. 그는 자신이 두 달여 동안 현지에 직접 가서 취재하고 체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 독특한 만화를 그려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이 기념비적 작품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사이드의 평가에 따르면, 한두 명의 시인과 소설가 제외하고는 점령지구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상황을 사코 만큼이나 절실하게 묘사한 사람은 여지껏 없었다고 한다. 사코는 어떠한 이념적 선동이나 과장 없이 희생자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드의 호평을 받고 있다.
사코가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취재한 것은 1991년 말에서 1992년 초로 1차 인티파타(봉기)가 아직 계속되던 때였다. 그러니 마치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상황과 엇비슷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그곳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강경진압, 정착민들의 습격, 지독한 고문, 넘치는 수용소, 검문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사코는 자신의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그가 점령지구에서 체험하는 내용을 전한다. 이런 기법으로 그는 독자로 하여금 현장을 더욱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풍선보다 더 많은 네모 박스에 긴 지문이 쉴새없이 이어지긴 해도 큼직큼직한 그림의 섬세하고 인상깊은 묘사는 이 지루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구나 이 만화는 그냥 한 번 보고 말 내용이 아닌, 어느 정도의 진지한 '독서'를 요구하고 있기에 그 정도의 인내는 감수해야 하리라.
사코는 무작정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편에만 서고 있지는 않다. 그는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주의 깊게 듣기는 하지만, 프로 저널리스트답게 나름대로 냉정한 균형감각을 잘 유지하고 있다.
점령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수도와 전기, 외국에 드나드는 것까지 모두 이스라엘 당국의 통제하에 있었다. 그러니 여기에 묘사된 그들의 삶이란 몹시 음울한 잿빛 그 자체였다. 예컨대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어떤 소년들은 총에 맞아 병실에 누워서도 들이닥친 군인들의 곤봉세례를 받을 정도로 처참했다. 팔레스타인 청년 중에 이십대 중반인데도 감옥에 갔다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니, 어쩌다 그렇게?"라고 물을 정도가 되었다니 이쯤되면 할 말 다하지 않았는가.
사메라는 팔레스타인의 한 지식인은 비교적 긴 시간 사코의 인터뷰를 주선해주는가 하면 친절하게 그를 안내하고 통역까지 맡아 준다. 사코는 그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는데, 그것은 사메가 특정 종교나 저항조직, 당파에 치우침 없이 힘겨운 이웃들을 착실히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는 작가 사코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특정 정파나 종교, 국가의 이해관계를 떠나 희생당하는 자들 입장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내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정작 필요하다는 생각 말이다.
맨 뒷부분에 부록으로 덧붙여진 박홍규 교수와 최진영 박사의 오리엔탈리즘 및 팔레스타인 역사와 분쟁에 관한 해설을 담은 글은 이 작품과 오늘의 팔레스타인을 이해하는 데 아주 좋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불과 엊그제도 뉴스를 통해 이스라엘 점령지구에서 자살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도 팔레스타인은 사코의 만화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점령과 계속되는 팔레스타인의 끈질긴 저항, 이 비극의 연원은 유태인들의 시오니즘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 등 강대국들에 있었다. 이로 보건대 지금의 팔레스타인 문제는 9.11 테러 이후 벌어진 이라크 전쟁과도 연결되어 있어 세계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과제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