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잣대를 들이대며 변화와 개혁을 끌어내려고 치열하게 목소리를 높여봤지만, 막상 표결에 들어가면 맥을 못 추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내 한 목소리는 15분의 1밖에 안되더군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외부인사로 참여한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공천에서 한나라당이 고루하고 늙은 정당의 이미지를 벗기를 바랐는데 당선 위주의 공천이 이뤄지면서 많은 좌절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정치 신인들을 대거 등장시키고 여성에게 가급적 공천 기회를 많이 주려고 애썼지만 특정지역 실질 심사 과정에서 현역의원 심사위원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어요.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물이 대거 공천되어야 한다는 것이 구호로 끝나버릴 때, 가장 화가 났습니다.”
외부 심사위원 6인 가운데 ‘한나라당 이미지 바꾸기’에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강 교수는 결국 목소리만 컸지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이번 공천심사위에 참여했던 것이 전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텃밭에서 다선 의원들이 당선을 보장받는 식은 곤란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 대표는 백의종군하고, 홍사덕 의원은 일산에 가서 싸워서 당을 위해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공천심사위원회의 작품이었어요. 일명 ‘김문수의 쿠데타’로 부르기도 했지요.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당의 이미지를 쇄신해보려고 공천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강 교수는 또 이혜훈 경제학 박사를 서초갑에 공천한 것도 ‘작품 만들기’였다고 말했다.
“서초갑이 여성특구라고 보면 곤란해요. 이혜훈 박사는 전문성을 가지고 남성후보와 당당히 겨뤄 뽑힌 준비된 후보였어요. 다른 경쟁후보들도 승복했고, 공천심사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기획 공천된 경우입니다. 앞으로도 준비된 여성후보들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강 교수는 정형근·김용갑 의원 등은 공천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개인적인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공천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지역에서 원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현역 의원들의 논리에 제압되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공천심사위에서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았던 강 교수는 “당선이라는 명분 이외에 정당의 인사관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정당 사상 최초 ‘후보청문회’
출사표 낸 여성후보 경쟁력 대단
민주당 공천심사위원 김송자 전 노동부차관
헌정사상 국내 최초 여성 차관이었던 김송자 전 노동부 차관은 민주당 공직자자격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김 전 차관은 “내가 여성으로서 공직생활을 하면서 밑에서부터 투쟁을 하면서 커온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번에 지역구 후보로 나온 여성들은 대단한 용기와 투지를 가진 분들이라고 생각한다”며 “8명의 여성후보가 단수후보로 결정되는 걸 보면서 감히 남성후보가 접근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또 “인천 중동지역에서는 경선을 통해 여성후보가 승리했다”면서 “전장에서 살아온 영웅”이라고 여성후보들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민주당이 다른 정당에 비해 후보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이는 나름대로 민주적인 절차를 밟는 과정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김 차관은 설명했다.
“후보가 많이 몰린 지역과 신인들이 많이 참여했던 지역은 정당 공천사상 처음으로 ‘후보 청문회’를 열어 유권자들에게 후보를 심판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정치 신인들의 경우 당내 경선이 국민경선으로 치러질 경우 기존 정치인에 비해 불리하잖아요. 그래서인지 후보 청문회를 거쳐 신인들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직접 후보 청문회 등에 참석한 김 전 차관은 “정당일은 처음 하는 것이라 처음에는 생소했다”면서도 “후보들의 진지한 토론과 열정을 보면서 감탄했다”고 말했다.
노동부 차관 시절, 민주당과 당정협의회 등을 하면서 친숙해져 이번 심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김 전 차관은 “여성들이 지역에서 경쟁력을 갖추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면서 “이번에 지역구에 출마한 여성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당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공직자자격심사위원회는 다른 정당과 달리 후보자 자격 심사만을 했고, 실제 공천은 중앙상임위원과 지역 유권자들이 한 셈이다. 김 전 차관은 “심사위에서 올린 후보들과 상임위에서 결정한 후보가 크게 다르지 않아 심사위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문화가 팽배했던 공무원 사회에서 여성 고위직 공무원의 신화를 일궈낸 김 전 차관은 30년 넘는 공무원 생활이 남성의 벽과 싸우는 과정이었다고 술회했다.
김 전 차관은 “지역구 여성의원들이 계속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끈질긴 투지력과 함께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당고위직 압력 없어 소신껏 심사
마구잡이식 여후보 공천은 지양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 조기숙 교수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지난 11일 열린 해산식에서 “만족스러웠다”는 평을 내놨다.
“당의장조차도 전혀 로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인사들이 소신껏 심사에 참여할 수 있었지요. 후보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잘못된 공천이 있었을지언정, 당의 로비나 개입에 의해 공정성을 해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열린우리당 공직자자격심사위원회에 외부인사로 참여한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공정하게 심사를 진행할 수 있어서 산뜻한 결론을 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 교수는 “밖에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민주적 과정을 밟으려고 애쓰는 정당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며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비례대표 한 자리라도 차지하려는 속셈이 있었던 사람부터 쫓아내는 게 내 일이었다”고 말해 듣던 대로 ‘인정사정 없는 저승사자’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심 없이 일하는 사람은 소신을 펼 수 없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면 됩니다. 그런데 비례대표에 뜻이 있는 사람은 당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질 수는 없지요.”
조 교수의 이런 뜻이 반영된 것인지 실제 외부심사위원 가운데 몇 명이 중도에 사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공과 사가 분명하기로 소문난 조 교수에게도 공천 과정에서 인간적인 갈등이 있었다. 이상수 의원 공천 여부를 놓고 원칙과 중심을 세우기가 어려웠다는 것. 조 교수는 “결국 당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털어놨다.
여성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조 교수는 단호했다. “여성후보가 나온 지역공천에 최대한 배려했다. 그렇지만 경쟁력이 없는 후보에게까지 여성이라고 해서 우선권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열린우리당에서 공천한 여성 후보들은 대부분 당선이 확실시되는 사람들로, 여성후보를 많이 공천하는 것보다 당선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을 하면서 조 교수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한 자리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정당인 취급하는 외부의 시선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편견에 대해 조 교수는 “자기 거울로 남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며 “외부의 시선보다는 나의 사심 없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풍언을 일축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