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하고 놀라웠던 탄핵 이야기가 학교 교무실이며 교실에서 넘쳐났습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모였다 하면 탄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때때로 논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노무현 아저씨'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지며 앞으로 탄핵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하며 질문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3학년 문학 시간에 들어가서, 본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오마이뉴스>에 실린 오마이플래쉬 '그 날을 기억하라'를 스크린에 비춰서 보여주었습니다. 우울한 배경음악과 함께 탄핵안이 가결되기까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학생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났습니다.
그 눈빛은 슬픔과 분노, 놀라움과 두려움이 함께 섞여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한 그 마음을 분출할 방법이 무엇인지 골몰하고 있는 듯도 합니다. 아마 아이들도 오는 4월 15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규 수업 시간에 정치적인 사안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하고 따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워낙 국민적인 관심이 높고 처음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라, 멀지 않은 미래에 '투표'라는 정치 참여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함께 이 사건의 의미를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정을 걷는데 목련이 막 꽃눈을 터뜨리는 걸 보았습니다. 이미 산수유 노란 꽃이 피어나 봄을 여실히 증명하더니 학교 본관 앞 화단의 오래된 목련나무에서 두터운 꽃눈을 뚫고 하얀 꽃망울이 나오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수십 년이 족히 되었을 원경고등학교의 이 목련 나무는 때를 만나 한 번 꽃을 펼치면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장엄하고 풍성합니다. 그러나 목련은 만개 후 빠르게 시들어버려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지라, 이제 막 꽃망울이 꽃눈을 열고 나올 때가 도리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이렇듯 봄은 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를 탄핵해도 민주주의의 꽃은 피어납니다.
이날 오후에는 우리 학교가 올해 제 1순위로 문화관광부에 신청해 유치한 '문화마을 들소리'의 '해설이 있는 참여 퍼포먼스'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이 공연은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문화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시골 학교나 대안학교를 찾아다니며 문화 예술을 체험하는 행사로 풍물과 타악, 퍼포먼스 등을 보여주는데, 저희 학교는 40명 가량의 마을 분들도 초청하여 우리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즐겼습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참여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하얀 풍선을 하나씩 나눠주며 공기를 채운 풍선에다 각자의 소원을 하나씩 적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매직으로 가족의 행복, 친구간의 사랑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부풀어오른 풍선에다 그려서 매달았습니다.
풍선처럼 한껏 들떠 하나씩의 소망을 담아 띄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탄핵으로 얼룩진 시국의 우울한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