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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국에는 전쟁터를 따라다니는 서사선인들이 있었다. 안내선인의 아버지도 바로 그 출신이었다. 그들은 전쟁의 시작과 결과, 전승과 패배를 모두 눈으로 보고 들어서 조정에 알리거나 사록담당자에게 진술했다. 그처럼 그들은 구술능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길눈 또한 밝아서 자주 안내선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에인이 그를 전령으로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대월씨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갑니까?"
안내선인이 물었다.
"아니오. 대월씨국까지 입니다. 거기에 도착하면 먼저 시장으로 가십시오. 시장통 끝머리쯤에 소호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게들이지요. 그 가게에 들어가서 별읍장님을 찾으십시오. 아마 지금쯤 매우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럼 전하실 말씀을 일러 주십시오."
"먼저 승전을 알려드리시오. 준비해주신 물자도 군수품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씀드리고 그 다음, 군사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으니 후진으로 출발시키겠다던 군사는 일단 보류하라고 전하십시오."
"그리고요?"
"필요사항이나 문제가 있으면 그때그때 전령을 띄울 것이니 우리들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안심하고 계시라 이르시오."
에인은 자기 주머니에서 다섯 피의 청동화폐를 꺼내 그에게 내밀며 덧붙였다.
"그리고 선배께서는 별읍장님의 대답을 들으신 후 곧장 돌아오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안내선인의 말이 먼저 떠났다. 에인은 잠깐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말머리를 돌렸다.
에인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군사들은 양을 잡아 아침식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그는 전승에 대한 흥분으로 아직은 식사를 할 생념이 없었다. 그는 서북쪽 마을로 말머리를 돌렸다. 어젯밤 자신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던 그 무리들의 마을을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쓸고 왔기에 사람들은 그런 괴성을 질러댔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집들은 붙어 있거나 외따로 떨어져 있거나 지붕들 모두가 불타버렸다. 그러나 거리만은 깨끗했다. 아니 초입에는 그랬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가에 던져지거나 포개져 누운 시체들이 많았다. 전혀 유쾌한 전경이 아니었다. 게다가 주검들은 각자 자신의 연민을 알리면서 묻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시체들을 치우거나 묻어주게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제후의 말이 전에 딜문에서는 회도를 사용했다지만 별안간 그 많은 항아리를 만들어낼 수 없는 일이니 그저 한적한 곳을 골라 나란히 묻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또 환족과 이곳 주민들의 죽음에 대한 의식이 다를 수도 있었다.
자고로 환족들은 죽음을 중하게 여겨 하인이 죽어도 그 입에 저승 갈 노잣돈을 넣어주는 법이지만 여기서는 어떤 식으로 치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저 그들의 방식을 따르면 되겠지. 또 포로들 중에 연고자가 있다면 참석도 시키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포로 처리는 제후의 몫이었다. 죽이든 살리든 그것은 제후가 알아서 할 일이고 자신들은 그저 제후가 올 때까지 지켜만 주면 되었다.
에인의 말이 별안간 주춤거렸다. 그 앞엔 몸에서 떨어져나간 머리 하나가 길 가운데로 굴러와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는 머리를 피해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서부터는 베인 목이 길 가에 늘비했다.
은장수의 군사들, 그 형제국 군사들이 사람의 목을 댕강댕강 자르면서 그렇게 밀고 왔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겁에 질려 짐승소리를 지르며 몰려왔던 것이었다.
칼을 들고 기뻐하던 형제국 군사들이 떠올랐다. 그 어린애들 같은 군사들이 맘껏 그렇게 칼놀이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잔인하고도 끔찍했다. 본국 군사였다면 창이나 칼로 사람을 찔러죽일지언정 이런 식으로 망나니 짖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효수란 적장이나 수괴들, 반역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이지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시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선왕은 모반을 꾸민 토후국 사람들까지도 옥에 가두고 다음 해에 개전의 정이 보이면 그대로 풀어주었다고 했다.
에인은 그만 돌아섰다. 길거리에 널린 목들이 저마다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발길을 돌리자 천리마도 안심을 했는지 바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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