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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행운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독자가 <헤르메스의 기둥>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대 이상이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동시대 작품들에 비해서 분명 세간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연금술과 르네상스회화를 다루고 있어 평론가들의 주목은 받았지만 독자들의 선택에는 실패한, 한마디로 베스트셀러는 아니었다.

그러나 <헤르메스의 기둥>은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큼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다. 뜻밖의 행운이라고 표현할 만큼 온갖 재미가 소설 속에 담겨 있다. 그리스로마신화, 르네상스회화, 연금술사, 유럽의 역사를 망라한 거대한 바다가 숨겨져 있다.

다만, 단점이라면 결말에서 드러나는 소설적인 완성도를 지적 할 수 있다. 어쩌면 초현실주의적 분위기가 짙은 결말에 독자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재밌는 책이며 지적인 소설이라고 평하는 데는 일말의 주저함이 없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소설’을 본다는 마음가짐보다는 ‘책’을 본다는 생각으로 첫 장을 넘겨야 한다. 그래야만 거대한 바다 속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헤르메스의 기둥>의 모티브는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다. 소설 속 주인공이 우연히 이 그림을 보다가 생기는 의문을 그림 속 우측에 위치한 기둥의 열주이다. 독자들도 책 읽기를 중단하고 그림의 기둥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기둥의 상단을 살펴보면 기둥이 하나인데, 하단을 살펴보면 기둥이 여러 개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인 것 같으면서도 여러 개로 보이는 기둥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흥미롭다. 더욱이 이 그림은 소설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그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소설은 이때부터 두개의 틀로 진행된다. 먼저 그림에 의문을 품게 된 미술학도 승호가 여자친구인 하영과 <긴 목의 성모>에 담긴 사연을 찾아가는 과정과 파르미자니노와 동시대 인물인 미셸이 연금술에 없어서는 안 될 ‘현자의 돌’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인’과 ‘과거인’이지만 동일 선상에서 취급할 수 있다. 실상 승호가 기둥의 열주를 추적하는 과정도 연금술로 연결되며 미셀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또한 둘의 추적 대상이 파르미자니노라는 점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대화를 한다. 미셸이 남긴 흔적을 승호가 해석하는 과정이나 점성술사의 도움을 받는 과정을 통해 이들의 대화는 가능해진다. 덕분에 독자들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들에 대한 숱한 흥미거리들을 맛볼 수 있다.

더욱이 중간 중간에 삽입된 그림들과 이 그림에 대한 인물들의 해석은 전문적이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만화책 보듯 감상할 수 있다.

주지했다시피 결론은 초현실적인 부분이 짙어 독자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백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듯 자신이 보고 읽은 신화, 전설, 연금술, 르네상스 회화들을 천천히 곱씹어 보면 된다.

아쉬우면 이 책을 통해 궁금해진 분야를 공부하는 계기로 간직하면 된다. 그 순간 어느 책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헤르메스의 기둥 1

송대방 지음, 문학동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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