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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기라고 하는 일본 장기와 한국 장기는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 한국 장기알이 둥글게 원형을 취하고 있는 데 비해 일본 쇼기 패인 고마는 납작하면서 오각형처럼 각을 이루고 있다. 한국 장기가 선을 따라 움직이는 데 비해 일본 쇼기는 칸을 따라 움직인다.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한국 장기는 상대의 패를 잡으면 무조건 목을 베어 버리는 참수형인 데 비해 일본 쇼기는 잡은 포로를 자기 편으로 되살려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왕을 잡으면 이긴다는 룰은 공통이다.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는 한국의 장기알은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백병전으로 상대방 장졸들을 일도양단하며 무차별 살육전으로 몰고가는데 그것이 속전 속결일수록 피바람이 회오리치면 칠수록 박진감이 있으며 관전자들이 환호를 보낸다. 반면 날카롭게 각진 쇼기는 전투에 임하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여 그 속도가 매우 느린 데다가 일단 잡은 포로를 계속 자기 편으로 써야 하는 용병술때문에 진행이 느리며 스펙터클하지가 않다.

따라서 장기는 단 몇 수만에 외통수로 끝나기도 하고 몇 개의 졸만으로도 끝까지 버틸 수 있으며 비기는 수가 나오면 무승부가 되기도 한다. 어떤 쪽으로 결말이 나든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쇼기는 잡은 포로가 몇인가, 그 포로 개개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전투내내 머릿속에 그려가며 유사시 다시 내 편으로 전장에 내보내는 고도의 전략을 펼쳐가야 한다. 그래서 쇼기는 장기와 달리 게임시간도 바둑 이상으로 오래 걸려 며칠을 두고 진행되기도 한다. 무승부도 거의 없다.

지금 열린 우리당의 인기가 수직 상승한 채로 쾌속 항진을 계속하고 있다. 당장 선거를 하면 강력한 거대여당의 출현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열린 우리당으로 말을 갈아타는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여론의 상승도 상승이거니와 그야말로 정신차릴 수 없을 만큼 당 내외의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열린우리당은 뭔가 착각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전조를 느끼게 된다. 바로 그 중 하나가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정치인들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데 이로 인해 일어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지도부조차 무신경하다는 것이다.

연이어 입성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본태성 지지성향을 가진 자라고 보기보다는 변태성 지지자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국민들이 구태로 지목하며 청산대상으로 삼고 있는 철새성향 인사라는 것이다. 지도부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인의 판단을 왜 마다해야 하느냐"는 의견도 "쿠데타 세력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존중되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고 있는 민의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의 근원은 개혁이라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침몰해가는 구식 잠수함'으로는 이 나라의 장래가 불투명하므로 '최신식 잠수함'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구식 잠수함의 발악적 쿠데타'에서 비롯된 부동층의 지지현상이 반사적으로 쏠려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야당의 충언(?)처럼 여론은 가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이번 선거를 치르는 국민들의 판단 기준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표현하자면 거시적 선택과 미시적 선택인데 거시적 선택의 기준은 민주 대 반민주 혹은 진보 대 보수로 나뉘어져 있어 당을 보고 표를 던질 것으로 보아지지만 미시적 선택기준은 후보자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마치 장기와 쇼기처럼 양쪽특성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제 열린우리당의 선택은 명료해야 한다. 단칼로 참수해야할 상대는 단칼로 참수해야 한다. 그래야 개혁이 성공한다. 그렇다고 참수가 능사만은 아니다. 살려서 쓸 사람은 살려야 한다. 단 누구를 살릴것인가는 민의에 따라야 한다. 쇼기에서도 포로를 무조건 재투입하지는 않는다. 투입할 자리에 내 부하가 살아 있으면 절대 넣지 않는 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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