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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이렇게 조용한 게 이상합니다. 옛날 같으면 학교에 대자보나 플랑(플래카드)만 해도 수십 종류가 휘날릴텐데요. 너무 조용한 것 같습니다."
1995년도 대학에 입학해서 석사 논문을 쓰고 있다고 밝힌 이종현(31세)씨의 말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안도 개강분위기에 젖은 대구지역 대학을 침습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캠퍼스는 일상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학생들의 관심은 그렇게 크지 않은 듯 보였다. 여러 대학에서 탄핵 거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의 분위기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직 투표권이 없는 1학년생들이어서 그런지 '탄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짜증난다"며, 정치권을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각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학생들은 벌써 수업용 홈페이지에 있는 '토론마당'에서 스스로 탄핵문제를 꺼내어 놓고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막상 발언의 기회를 주자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학생들도 있었다.
대부분 부정적 견해
자신의 입장을 가능한 논리적으로 밝혀 달라는 요구에 대해 올해 대학 1학년생인 이운성(19)씨는 "대통령이 자초한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국회의원들이 잘한 것도 없다"라는 입장을 표현하면서, "정치가 너무 썩어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안 자체만 놓고 보면,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탄핵할 자격이 없는 국회원들이 탄핵으로 몰고 간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군대에 갔다와서 다시 1학년에 복학했다고 밝힌 김종길(23)씨 역시 "국민이 뽑아 놓은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이번 탄핵안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다른 강의실에서 만난 이세윤(19)씨는 "국민이 국회의원도 뽑았고, 대통령도 뽑았다"면서, "국회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하는 곳으로, 국민들의 뜻이 잘 반영되었어야 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익과 마음대로 한 것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라는 말을 덧붙혔다.
같은 강의실의 이중호(19)씨 역시 "탄핵에 대한 반대의견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한 것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닌가?"라면서, 국회의원들이 밝히고 있는 압도적 표 차이는 결국 국민정서를 잘못 읽고 있는 대표적인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의견들은 특히 수업용 홈페이지에 있는 토론마당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었다. 김상현씨라고 이름을 밝힌 학생은 토론마당에서 이것은 한 마디로 "밥 그릇 싸움"이라면서 "이번 탄핵안은 헌재에서 기각될 것"이라는 의견을 올렸다.
김정우라고 밝힌 학생 역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므로, 심판도 국민이 해야 할 일"이라면서 이번 국회의원들의 탄핵은 한마디로 '월권'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장상호씨 역시 "국민들을 물로 보는 국회의원들"이라는 글에서 '노 대통령이 잘했다고 할 수는 없어도 국민들이 70%나 반대하는 탄핵을 했다"면서, "사천만 국민은 도대체 뭡니까?"라고 성토하고 있다. 특히 김영민씨는 이번 탄핵사태에 대해서 "제발 잊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대구 지역구 의원들이 대다수이더군요"라면서 이 지역이 뽑아 놓은 국회의원들에 대해서 '부끄럽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찬성 쪽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학생도 간혹 눈에 띄었다. 강의실에서 만난 김아무개씨는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발동시켜서 이룬 탄핵이므로, 그것에 대해서 잘잘못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진(20)씨 역시 "대통령을 뽑은 것도 국민이고, 국회의원들을 뽑은 것도 국민"이라면서 이 일을 이렇게 끌로 간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헌재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토론마당에서도 나사렛이라고 밝힌 학생은 탄핵안에 찬성하는 이유로 "불법자금"을 들면서 "깨끗한 정치를 원한 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는커녕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고 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노 대통령의 감정적인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결국 불법자금과 그것에 대한 대응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는 것이다. "일개 교통경찰도 돈을 받으면 경찰로서의 인생이 끝이 난다"면서 대통령은 이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아버지와는 다른 견해
이번 취재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기성세대와의 의견차이를 겪은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 토론마당에서 반대의견을 분명히 밝힌 장상호씨는 그가 남긴 글에서 "저희 아버지께선 찬성 쪽이더군요. 괜히 이 일로 인해 가정의 불화가 생길까봐 아버지 앞에서 탄핵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밝혔다. 대구 지역의 기성 세대가 가지고 있는 입장들을 읽기에 충분한 견해였다.
역시 반대의견을 밝힌 제갈읍씨는 아예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했다가 한 대 맞을 뻔했습니다"라고 밝히면서, "저희 아버지는 탄핵을 찬성하십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강의실에서 만난 이아무개씨는 "제 주위에 있는 어른들은 모두 대통령 잘못이다"라면서 "이번 기회에 대통령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적어도 대구 지역의 많은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을 개진하고 있으며, 이번 책임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래도 강의실에서 만난 대부분의 대학 1학년생들은 이번 탄핵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번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들을 심판할 텐데"라면서 아쉬운 표정을 짓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이 '노사모'나 혹은 '노 대통령 지지자'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발언 중에나 혹은 글을 남기면서 "노사모가 아니다"라거나 또는 "원래 노 대통령은 싫어했다"라는 전제를 먼저 달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들의 발로로 보여진다.
대구 지역의 일반적 정감이 이들로 하여금 노사모나 혹은 노 대통령 지지자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탄핵사태를 통한 헌정의 중단은 권력욕에 물든 국회의원들에게 있다는 반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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