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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한 지도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에 개봉한 <와이키키 브라더스> <나비> <라이방> 등과 함께 나란히 작품성을 인정받고도 흥행에 실패하는 바람에 '와라나고를 부탁해'라는 이름으로 '살리기 운동'도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와라나고' 운동과 별개로 인천에서는 문예회관을 빌려서 상영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대부분이 인천에서 촬영된 '인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화면 곳곳에는 인천의 냄새가 깊게 배어 들어있습니다. 인천 북성동 화교촌, 월미도, 만석동 고가차도, 동인천역이 스크린 곳곳에서 엿보이고, 거기에 구질구질하고 전철을 한참 타야만 되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혜주(이요원)의 심리는, 정재은 감독이 인천 토박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합니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중학생 때까지 자란 동네였고, 어린 시절 유난히도 극성맞았기에, 동인천 주변 골목길 구석구석을 안 가본 곳이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면서 좌절감을 느끼고야 말았죠. 동인천의 어느 쪽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단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역시 인천 토박이인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며, 결국 그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어도 섣불리 카메라를 들고 나서지는 못했습니다.

날씨 화창한 3월의 어느 날. 그간 한참을 벼르고 벼르던, <고양이를 부탁해>의 촬영지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거창하게 나선 것과는 다르게, 시내버스를 타고, 손에는 디지털 카메라만을 챙겨든 단출한 모습이었습니다. 동인천역에서 내린 뒤, 신포동을 지나 북성동 차이나타운을 넘어서 인천역으로 갔습니다.

이 차이나타운은 영화 속에서 쌍둥이 자매인 비류(이은실)와 온조(이은주)가 할아버지에게 갈 긴 짐을 들고 낑낑거리고 올라가던 곳입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많았기에, 쌍둥이 자매가 찾아간 집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못 찾았답니다.

▲ 좌측 : 지영이 살던 만석동 고가차도 아래 철길 사진, 우측 : 영화속의 모습
ⓒ 원호성
인천역에서 만석동 고가차도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만석동 고가차도에서 태희(배두나)와 지영(옥지영)은 미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길도 여기까지였습니다. 지영이 살던 쓰러져 가는 집은 이 고가차도의 아래로 내려가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만석동에는 옛날부터 똥바다, 똥부두 하는 식으로 '똥'이라는 말이 항상 붙었습니다. 인천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였고, 옛날에는 동네에 화장실이 없어서 똥이 길 여기저기에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저는 만석동 아랫동네인 송현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동네 어른들조차 우리들에게 화도고개 위에 사는 만석동 아이들과는 절대로 놀지 말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살던 송현동이 그렇게 잘 살던 동네가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인천에서 20년을 넘게 살았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해 인천 곳곳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곳은 정말 인천의 오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지영이가 걷던 철길과 고가차도가 있었습니다. 철길은 기차가 안 다닌 지 오래이고, 고가차도는 화수부두와 인천역을 연결해주는 길로, 큰 트럭들이 지나다녀 굉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곳에는 지영의 집과 같은 판잣집들이 있었습니다.

▲ 태희(배두나)와 지영(옥지영)이 앉아 이야기하던 반찬공장
ⓒ 원호성
고가도로의 뒤로 돌아가자, 태희와 지영이 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반찬 공장이 보였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태희와 지영이 저 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것만 같았습니다. 태희는 버스에서 구입한 무지개 칫솔을 지영에게 건네고, 지영은 자신이 그린 텍스타일 그림을 태희에게 건네주며 말입니다.

이 곳에서 더욱 걸어가면, 사람 한 명, 손수레 하나가 간신히 지날만한 좁은 길을 통해 만석동 똥부두가 나옵니다. 영화 속에서는 썰물로 모든 물이 다 빠져 휑할 때, 태희와 지영이가 이야기를 나누다 혜주의 전화를 받는 곳으로 나왔습니다.

마침 제가 갔을 때는 밀물이었고, 영화 속에서 느껴진 황량함 대신에 쭈꾸미를 싣고 온 배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좁은 부둣가에 앉아 생각보다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몇 개의 사진을 찍었지만, 영화의 느낌이 살지 않았습니다.

▲ 만석동 똥부두의 모습
ⓒ 원호성
구질구질한 모습의 동네이지만, 전체적으로 활기찼습니다. 철길 위에서 오리새끼들과 뛰어 놀며 웃는 동네 꼬마들, 똥부두에서 쭈꾸미를 담은 수레를 부지런히 바깥 큰길로 날라 가는 활기찬 모습의 주민들. 동네의 겉모습과 달리, 사람들은 매우 밝았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본 제 서울 친구들 중 몇 명이 제게 물어봤습니다. 정말로 인천이 그렇게 구질구질하냐고 하면서, 어떻게 그런데서 살 수 있냐고 하더군요. 그러나 여태까지 살면서, 전 인천을 떠나 산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오히려 미처 내가 알지 못하던 저런 동네를 다녀오자 더더욱 인천이 좋아졌습니다.

그동안 인천이 내게 숨기고 있던 부끄러운 미소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구질구질한 동네일지는 몰라도,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까지 구질구질하지는 않았습니다. 삭막할지도 모르는 대도시이지만, 시골처럼 해맑게 웃는 사람들이 있는 곳, 이웃을 서로 배려해주는 정이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인천이기에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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