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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책  부시 대통령의 전 테러 보좌관인 리처드 클라크가 쓴 <모든 적들에 대항해서>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의 책 부시 대통령의 전 테러 보좌관인 리처드 클라크가 쓴 <모든 적들에 대항해서>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전직 안보 및 대 테러 보좌관을 지낸 리차드 클라크의 9·11과 이라크전 관련 폭로 서적인 < 모든 적들에 대항하여 Against All Enemies>가 워싱턴 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2일 맥클랠런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것은 미국 일반대중의 구미에 맞춘 '딕 클라크'의 꾸며낸 이야기"라면서 "(그가 가진 정보를 통해) 9·11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무책임하고 공격적인 것이며 완전한 거짓"이라고 공격했다.

리차드 클라크는 22일 미 서점가에서 일제히 판매되기 시작한 그의 책 <모든 적들에 대항해서>에서 자신이 9·11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알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으나 부시 행정부가 이를 묵살했고, 결국 9·11이 일어나자 알카에다보다는 이라크의 배후설을 조작해 엉뚱하게 이라크전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딕 클라크의 꾸며낸 이야기?

맥클랠런 백악관 대변인은 "클라크가 부시행정부에서 국내 안보부 보좌관 자리를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사임했다"면서 "클라크는 부시 행정부에서 대 테러전 고위 관리였으며 현재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국가안보문제 보좌관인 랜드 비어스의 절친한 친구"라고 주장해 클라크와 케리 후보간의 어떤 연관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리차드 클라크는 1973년 닉슨 행정부에서 핵무기 및 유럽안보문제 분석가로 공직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 3월 퇴임할 때까지 30여 년간 안보 및 테러 분야 관리로 이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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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시 보좌관 "이라크 위기 조작됐다"

한편 맥클랠런 백악관 대변인의 비난 성명에 이어 딕 체니 부통령,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도 클라크의 주장에 대해 맹렬한 기세로 공격했다.

딕 체니 부통령은 22일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해 "클라크는 그의 재임시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결국 승진을 못하게 되자 부시에 대해 당파적인 보복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면서 "클라크는 당시 9·11 사태 해결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고 당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부시 취임하자마자 알카에다 문제 거론"

백악관은 월요일 공개된 '(클라크에) 직접 대응하기'라는 메모에서 "대통령은 알카에다의 위협을 인식하고 있었고 취임하자마자 즉각 알카에다를 제거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백악관 보좌관들도 "부시가 취임했을 때 알카에다 문제가 최우선 주제였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9·11 당시 클라크의 상관이었던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도 밀려든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클라크는 알카에다가 기승을 부리던 1990년대뿐 아니라 1998년 동아프리카 두 곳에서 일어난 미국 대사관 공격사건, 2000년 예멘 사건 그리고 2001년 세계무역센터 폭파사건 당시 백악관에서 대 테러전의 손꼽히던 관리였다"고 밝히고 "그러나 그는 지난 20년 동안 알카에다에 대항해서 효과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라이스는 "사실상 9·11 당시 클라크는 (그 사건 해결의) 책임자 위치에 있었고,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전략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는데 그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 거부되었던 하찮은 아이디어만 제공했을 뿐"이라고 클라크의 업무 능력을 비하했다. 라이스의 발언 중에는 앞서 체니가 '9·11 당시 클라크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주장과는 상반되는 점도 발견된다.

라이스 "클라크는 9·11 당시 책임자 위치에 있었다"

클라크는 책에서 "그가 알카에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정보들을 부시 행정부 고위관리들과 공유하기를 원했으나 9·11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까지 관심조차 보여주지 않았다"고 서술한 바 있다.

클라크는 또 "이라크 위기는 날조된 것"이라면서 이라크 전쟁을 "불필요하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전쟁"이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급진적인 테러리스트들만 양산할 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클라크는 22일 ABC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미 그의 책에서 주장한 대로 9·11이 일어난 직후인 9월 12일 부시와 상황실에서 가졌던 회의 장면을 소개하면서 "부시가 나를 포함한 몇 명 보좌관을 작은 회의실로 이끌어내고는 나와 동료들에게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며 매우 분명하면서도 함축적으로 9·11 배후에 이라크가 있다는 말을 하기를 원했다"면서 "그들이 그랬던 이유는 정권을 잡기 전부터 이라크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백악관 "부시, 클라크 등과 회의 가진 기억 없어"

맥크랠런 백악관 대변인은 <시카고 트리뷴>과 한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은 그러한 회의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으며, 라이스 안보보좌관도 "그런 회의가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클라크는 테러리즘과 이라크 전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대처에 대해 비판하며 사임한 두 번째 관리다. 앞서 사임한 전 재무보좌관 폴 오닐은 지난 1월 부시와 그의 막료들은 당초부터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었으며 9·11 사건을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을 위한 빌미로 이용했다고 공격한 바 있다.

한편 대부분 공화당 지도급 인사들은 클라크의 주장을 비난하면서 백악관을 옹호하고 나서기는 했으나, 일각에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에 대한 부시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일고 있는 터에 터진 클라크의 폭로가 부시의 '정직성'에 흠집을 더해 대선 가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클라크의 폭로가 유권자들에게 마치 음모와 계략으로 뒤덮인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냄새를 풍길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의 척 해겔 상원의원(네브라스카)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한 인터뷰에서 클라크의 책을 가리켜 "이 책은 아예 (이러한 책을 쓰도록) 책임을 맡은 고도의 전문가에 의해 쓰여진 책"이라고 흥분하면서 "백악관은 클라크의 주장의 신뢰성을 따지기보다는 먼저 책의 저작 책임을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화 의원 "누가 책 썼는지 밝혀내야"

이번 클라크의 폭로는 여러 방향에서 부시를 궁지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 9·11 사건을 조사하는 독립기관이 이번 주부터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에서 근무해 온 국가안보 관리들에 대한 증언을 청취할 예정인데 백악관은 (국가안보에 대한) 헌법상의 특권을 내세워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의 공개적인 증언 청취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8명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부시에게 서한을 보내 이들의 증언 청취를 허용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던 차에 이번 폭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론은 의혹 어린 눈초리를 보내며 부시 행정부가 공개 증언 청취에 대해 어떤 태도 변화를 보일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만일 라이스의 증언이 클라크의 폭로와 상당 부분 맞아떨어질 경우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클라크의 책이 전국 서점가에 뿌려진 것과 동시에 1600만명의 미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클라크가 CBS의 '60분'에 출연하여 9·11과 이라크전의 전후 내막을 생생하게 폭로한 것은 미국민들에게는 물론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클라크의 폭로, 공화당원들에 큰 '충격'

그동안 자신을 '전시 대통령'이라며 '테러리즘에 대한 용감하고 강력한 대처'를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자산으로 여기며 재선을 꿈꾸고 있던 부시에게 클라크의 폭로는 이제껏 나타난 공격 중에서 가장 강력한 '어퍼컷'이다.

더구나 부시가 이라크 전 1주년을 맞아 '전시 대통령' 이미지로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케리를 근소한 차로 앞지르고 있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부시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부시의 측근들과 공화당 의원들이 클라크가 폭로한 지 수 시간도 지나지 않아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것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존 케리 민주당 후보는 22일 막 발간된 클라크의 책을 읽으며 우선 폭로의 여파를 지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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