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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영토를 찾았으면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는 게 도리가 아닙니까?"

"고맙지요."

제후는 우선 그것은 인정을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고맙구 말구요. 하지만 이건 벌판에 돌아온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전에 이 곳은 인근에서도 가장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논과 밭을 잘 가꾸었고 야산에는 과일도 풍성했습니다. 한데 논은 간 곳 없고…."

'적반하장이로군' 강 장수는 속으로 그렇게 되받았다. 그러나 제후가 저렇게 나오는 데는 무슨 속셈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계속 징징거리게 할 게 아니라 속내부터 까보이게 해야 한다. 강 장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요지를 말씀하십시오."

강 장수는 나이가 많은데다 유경험자였다. 정벌 요청자가 이렇게 나올 때는 이번 전승의 성과를 거저 먹자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무릇 제후국의 제후들은 그런 잔머리를 잘 굴리는 법이었다. 강소 북부의 제후도 침략자들을 토멸해 주었더니 둑이며 농토 피해가 커 전투비용을 분담할 수 없다고 배짱을 부렸다.

"무엇 하나 남은 게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저 많은 군사들의 입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입니다."

강 장수는 그 말도 납득할 수 없었다. 정벌 뒤 마을을 뒤져보았으나 여기엔 곡식창고가 따로 없었다. 그들은 주로 양젖과 양고기를 먹고살았던 것이었다. 제후는 그 종족들의 식생활 습관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논밭이 방치되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했을 터이다. 강 장수가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원정군을 요청할 때 군사들 주둔이나 그 입은 감안하지도 않았더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요…."

제후는 길게 한숨까지 쉬었다. 애초 그의 생각은 여기 남아 있을 양식만으로도 몇 달간은 끄떡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계산하기를 돌아오는 주민들에게 일정금액을 분담시키거나 이웃 혹은 먼 우호국에서 그 나라의 특산물이나 금은보화를 얻거나 빌려서 태왕에게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면 정벌에 대한 감사도 되고 그간의 군비도 탕감된다는 것이었다. 설령 태왕이 지출한 군비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쪽 지방의 교역권이 딜문에 있으니 크게 서운해 하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한데 건진 것이라곤 적장의 집에 남은 무명과 청동기 접시 등, 어디서 약탈했을 게 뻔한 잡다한 보석과 불필요한 양가죽만 수천 피로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팔아서는 당장 양식을 사들일 수가 없었다. 함께 지내면서 익히 보았듯이 군사들의 먹성은 대단했고 더욱이 이틀에 한번 꼴은 밥을 먹어야 했다. 그것이 환족의 특성이었다. 유목민 생활을 해도, 대상을 떠나도 반드시 쌀을 챙겨가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곡식 한 톨도, 겨울을 지낼 만큼 충분한 짐승도 남아 있지 않다면 이번 정벌은 마치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 금을 그어놓고 우리 땅을 찾았다고 좋아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 모르셨다면, 천이 아닌 2천 군사가 한꺼번에 왔더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이제 강 장수는 알 것 같았다. 그는 기대했던 재물이 달아나서 저렇게 징징대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더 미웠다. 그리고 내친 김이었다. 작은 새는 제가 싼 똥 무더기를 보고도 큰 새가 다녀갔다고 놀란다고 했다. 대월씨국에서 그가 했던 말을 되넘겨준다면….

강 장수가 말했다.

"이제 곧 나머지 군사 천도 도착할 텐데, 그땐 어쩔 참입니까?"

그 말까지 들먹인 것은 제후에게 책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작태들이 가소로웠던 때문이었다. 정벌 전에는 그래도 예의를 차리더니 이젠 마치 자기가 총지휘자인 듯이 으르딱딱거렸다.

그러니까 죽도록 싸워준 자기네들 신세가 완전히'말고기'꼴이 된 셈이었다.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말고기를 먹여 살려놨더니 '아이구 말+내야!'하고 투덜대더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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