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입학식 날 내리던 봄눈에 영영 안 올 것만 같던 봄이 들판에 왔다. 광덕리 할아버지의 논두렁을 태운 연기끝을 더듬다보면 먼 산에 여린 연두빛 나뭇잎이 보인다. 먼저 태운 논두렁 사이로 비집고 나온 쑥도 젖살처럼 흰빛을 보이고 노랗게 피운 꽃다지는 봄햇살을 받으면서 들길을 오래 걷고 싶게 한다.

▲ 봄 만나러 가는 길
ⓒ 신영숙
봄나물 캐러 가기로 한 날. 아이들 열 명 중에 희찬이가 10시가 다 되도록 오지 않는다. 늦잠 자다가 늦게 와서 "선생님" 하고 씩 웃고 들어설텐데 아무도 없으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서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갔더니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고 헤매다가 겨우 눈뜨고 나온다.

"잠꾸러기 희찬아, 우리가 너 데리러 왔어. 좀 자지마라."

성은이, 다경이의 핀잔에 한번 웃고 마는 희찬이가 밉지 않다. 모두 같이 학교 앞 개울을 건너 논두렁을 지나 양지 쪽 산비탈 밭에 갔다.
쑥을 캐기로 하고 가져온 숟가락으로 쑥 하나 캐는데 보물 찾기보다 어렵다.

"쑥을 이렇게 따면 돼요. 야, 나 열개도 더 땄다."

▲ 햇볕 잘 드는 곳에 아이들 마음같은 쑥이 있습니다.
ⓒ 신영숙
중희가 줄기 하나 없이 잎만 따서 보여주면서 으쓱댄다. 칼로 캐면 위험하고 그냥 캘 수도 없어서 가져온 것이 숟가락인데 잘 안되니까 그냥 손으로 잎만 딴 것이리라. 어째 쑥과 아이들 사이에 실랑이만 하게 만든 꼴이 되어버렸다.

마침 여기저기 눈에 보이는 냉이를 캐기로 하고 슬그머니 쑥보다 냉이가 더 맛있다면서 작은 밭을 온통 뒤졌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사람은 딱 교사인 나 혼자인지라 아이들은 수도 없이 밭에 보이는 모든 풀들을 가져와서 묻고, 다시 가고, 묻고, 다시 가고.

▲ 캐서 쑥떡해야지.
ⓒ 신영숙
"이것 냉이지요?"
"아니, 그건 꽃다지."
"이것 냉이지요?"
"아니, 그건 방가지똥"
"이것 냉이지요?
:아니, 그건 개불알꽃"
"이것 냉이지요?"
"아니, 그건 광대나물"
"이것 냉이지요?"
"아니, 그건 씀바귀."
"이것 냉이지요?"
"아니, 그건 제비꽃."
"이것 냉이지요?"
"그건 엉겅퀴."
"가시가 달려서 아파요. 먹으면 안되지요? 아프니까."
그럴 듯한 해석까지 덧붙인다.
"하지만 먹을 수도 있어. 약으로도 쓰이는걸."

▲ 꽃다지라구요?
ⓒ 신영숙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알 수 없는 풀들을 가져오기도 하고 정말로 냉이를 찾아 오기도 한다. 스무고개라도 하는 것처럼 찾은 아이는 발걸음에 폼도 좀 잡고 못찾은 아이는 다시 달려 가서 밭에 눈맞추기를 한다.

우리 반에 제일 어린 아이 톨다는 냉이 세 개를 캐서 엄마한테 가지고 간다면서 좋아라 비닐봉지를 흔들고 민재는 모든 풀들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다. 은사는 쑥으로 무엇을 하냐고 물어보고 떡도 해먹는다니까 내일 떡 해 온다고 쑥만 찾으러 다닌다.

▲ 이거 쑥이죠?
ⓒ 신영숙
달래를 가르쳐 줬더니 성은이는 할머니가 제일 좋아한다면서 달래만 찾으러 다닌다. 모두 자기보다 가족들에게 가져다 주고싶은 이쁜 맘에 얼마나 열심인지.

돌아오는 길에 보니 봉지 안에 흙 반, 냉이 반이지만 그래도 한주먹씩은 되었다. 아이들은 봄바람이 부는 논두렁길을 봉지를 흔들면서 뛰어간다.

오늘 저녁은 냉이 몇 개 들어간 된장찌개를 가운데 놓고 가족들에게 으스대면서 달콤한 냉이 맛과도 친해지겠지.

▲ 이건 냉이 맞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