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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꽃의 걸음걸이로 봄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밤 기차를 타고 남도로 향할 때마다, 새벽의 청량함이 더할 수 없이 좋아서, 꼬박 5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버스 안까지, 벚꽃 향기 밀려 들어오는 남도의 봄, 바야흐로 지리산 자락에서는 환하게 벙그러진 꽃들이 사람들을 부르고 또 부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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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의 홍매는 여전히 곱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관광객들로 소요해지기 전의 산사는, 말할 수 없이 장엄한 고요를 품고 있습니다. 대웅전을 등에 지고, 저만치 지리산 자락을 굽어 보노라면 사바 세계의 번다함이 꿈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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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에서 쌍계사까지,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그 길. 그길을 걷다가 멈추고, 멈추었다가는 좀처럼 일어설 수가 없어서, 눈 뗄 길 없는 풍성한 초록에 마음을 빼앗겨 앉을 수밖에는 없어서, 3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표정이 한없이 행복해서, 더불어 그 행복을 나눠 받다 보니 더 그렇게 되고 말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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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마을까지는 아예 신발을 벗고 걸었습니다. 알맞게 데워진 아스팔트를 맨발로 걷다보니, 발바닥에 와서 박히는 작은 돌멩이들조차 너무 이뻐서 걸음이 더 더뎌지고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데 바빠서, 혹시라도 이 아름다운 시간들을 잊고 지낸다 하더라도, 내 발은 반드시 기억해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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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피어난 산수유 꽃구름 속에서 소요하다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참으로 힘겨웠습니다. 사진에 다 담지 못한 추억은 제 두 발에 새겨 두었습니다. 결국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던 누군가의 말처럼, 봄꽃들의 향연 덕분에 올 봄, 저는 또 이렇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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