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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근이가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이 될 때였다. 예근이가 이수하기로 신청한 각 과목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학습 목표와 수업을 받을 때 학생들이 지켜야 할 규칙과 방침이 적혀 있는 편지를 학부모나 보호자(guardian)에게 보내서 서명을 받아오게 했다. 학부형과 교사의 간접적인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면서 약속이었다.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3학년 진학반을 담당했을 때였다. 예근이가 다니던 미국 학교 선생님들의 방법을 나도 학생들과 학부모들께 적용한 적이 있었다. 나에 대한 짧은 소개와 인사, 일년 동안 가르칠 내용과 학습 목표, 수업 시간에 지켜야 할 규칙, 마지막으로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편지를 학생들 편에 보내서 부모와 본인의 서명을 받아 오게 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은 이런 편지를 어색해 했고, 부모님께 그 편지는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서명을 해서 제출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업 시간에 지켜야 되는 규칙은 나만의 공허한 규칙으로 끝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에 간지 일년 후에 시카고에 살고 있는 아는 분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분들은 영주권을 갖고 미국에서 생활한지 10년이 넘었다. 미국에서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큰 딸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초대하는 날이 있어요. 그날은 각 교과목 선생님들이 본인의 교실에서 여러 가지 유인물을 준비하고 학부모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요.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신청한 교과목과 관심 있는 과목의 선생님 방을 방문해서 교과목의 특징과 교수 방법, 수업을 받을 때의 규칙과 벌칙, 평가 방법 등등에 관해서 담당 선생님의 설명을 직접 듣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진지하게 선생님께 질문을 해요. 일단 그런 시간을 갖고 나면 부모들은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이러니저러니 하는 불만의 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단순히 미국 학교 교육제도의 좋은 점이라기보다는 학부형과 교사, 학생들 사이에 열려 있는 마음과 관심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른다. 그분은 이러한 학교 행사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8학년 올라가면서 예근이는 학교성적 관리를 하면서 조금씩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예근이의 8학년 일년 목표는 전 과목 A를 받아서 중학교 졸업할 때 (여기서는 초등학교가 5년 과정, 중학교가 3년 과정이기 때문에 8학년이 중학교 졸업반이 됨)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우등상을 받으면서 졸업하는 거였다.

한국에 혼자 있는 아빠에게 안겨 주고 싶은 선물이라는 말을 예근이는 다짐이라도 하듯이 반복해서 했다. 아이들이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나도 아이들의 학교 성적을 은근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한 학년이 쿼터제로(4/4학기) 되어 있어서 필수과목은 일년 동안 계속해서 들으면서 동시에 사분의 일씩 주기로(9주) 선택과목을 두 가지씩 본인이 하고 싶은 것으로 선택해서 듣게 되어 있었다.

선택과목으로는 페인팅, 컴퓨터, 연극, 사진, 오케스트라, 농구, 등 여러 가지 강좌가 열려 있다. 필수과목으로 영어(ESL를 들어야 하는 학생의 경우는 ESL 성적으로 영어 성적을 대치), 수학, 과학, 오클라호마 역사, 그리고 선택과목으로 컴퓨터와 페인팅을 예근이는 신청했다.

미국 학교의 성적은 평상시의 숙제, 수업 시간에 보는 퀴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합해져서 평균을 내서 성적 처리를 하는데 90-93 A-, 94-96은 Ao, 97이상은 A+이런 방법으로 성적을 산출해 냈다.

평소에 숙제는 얼마나 잘 했는지, 수업태도는 어떤지, 수시로 보는 퀴즈는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성적표에 이런 모든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간고사 성적과 기말 고사 성적을 비교하면서 분석할 수 있도록 과목별로 일년에 4번 성적표가 나온다.

선생님이 기대했던 기준보다 더 숙제를 잘해 오든가, 에세이 식 퀴즈에서 논리 정연하게 잘 준비해서 작성했다든가 하면 100점하고도 보너스 점수라고 해서 5점 10점 정도를 더 가산해서 준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다소 실수를 해도 평소에 가산점을 많이 받아 놓으면 전체 평균 점수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점수 제도는 완벽하게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 한 것이다. 나로서는 이런 채점 방법이 낯설고 심지어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수학 숙제를 내주고 집에서 풀어 온 결과를 다음 수업 시간에 선생님 풀이에 맞추어서 각자 채점을 하는데 그 결과가 그대로 여과 없이 성적에 반영된다는 것이었다. 숙제를 안 해 온 학생들이 아침에 와서 다른 친구의 숙제를 베낄 수도 있고 공부를 잘 하는 친구의 노트를 미리 맞추어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식의 성적 반영이 가능할 수가 있을까.

예근이에게 물어 보았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 중에서 남의 것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거나 답을 미리 다른 학생과 맞추어 보든가 하는 학생의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예근이의 답변이었다.

남의 것을 모방하고 복사하고 더더욱 커닝하는 것은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하는 행위와 똑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아 온 그들만의 정서와 문화의 결과 덕분일 것이다. 플레이저리즘 (plagiarism: 표절)한 것이 밝혀지면 성적이 F처리 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학교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미국 대학의 방침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하여튼 나로서는 상당히 부러운 평가 방법이었다.

물론 미국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미국 공교육의 문제점이나 학생들의 사고에 대해서 우려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미국은 주마다 학교 제도나 강조점이 다소 다르고 학생들의 수준 정도에서도 엄청나게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교육의 좋은 점 또는 나쁜 점을 한마디로 운운한다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단지 내 직업이 교사이고, 게다가 우리 아이들 두 명이 미국 공립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평소에 한국에서 느꼈던 문제를 놓고 상호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내게는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게다가 내가 이수했던 과목 중에 하나가 Sociological Foundations이었는데 주로 미국의 교육의 역사며 미국 학교가 갖고 있는 문제점 및 핫이슈를 다루는 과목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10여명의 학생들과 20년 동안 중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도 하고 교장 선생님으로도 근무한 경험이 있는 헤드릭(Hedrick) 교수님과 미국 학교의 이런저런 문제점을 놓고 토론한 적이 있었다.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이 서로 자기네 나라의 교육제도나 교사의 사회적 위치(일본, 대만, 중국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미국은 교사의 위치나 존경도가 높은 나라는 아니다. 가르치는 직업은 미국에서 명예직에 해당되는 직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봉급도 다른 전문직에 비해서 열악한 상태다.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여자들이 하는 분야라고 치부해 왔고 많은 교사들은 학문적인 분야보다는 가르치는 기교(technique, art, method)를 중점으로 공부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학교수라든가 연구원들에 비해서 박식하고 교육을 아주 잘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교사들을 학부모, 학교장, 정치가, 교육청(board education)의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보병(foot soldiers) 정도로 간주되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한국의 교사들이나 미국의 교사들이 등뼈가 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최소한 자기의 수업 만큼은 보장받으면서 가르치고 있다. 교사의 결정과 판단은 어떻게 보면 절대적인 것이다. 어떤 것을 기준으로 우리 아이의 숙제가 80이고 왜 저 아이의 숙제가 보너스까지 받아서 105점인지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수행 평가와 수준별 수업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온 터라 미국학교에서 학생들의 평가 부분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서는 저절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부모, 교사, 학생들 사이에 열려 있는 마음과 신뢰감이 무너져가는 한국의 공교육을 살리는 초석이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전제되지 않는 한 교사의 재량권은 축소되고 학생들에 대한 평가 조차도 편의주의내지 형식주의로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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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음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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