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주먹이 안면으로 날아온다. 날렵한 발차기에 복부를 가격 당한다. 쉴새없이 맞으면서도 줄기차게 상대방으로 파고 들어간다. 찢긴 눈 사이로 흐르는 피를 글러브로 훔치고 '피식'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서서 반격을 가한다.
결국 상대 선수는 무릎을 꿇고 김현성(22·정진체육관) 선수는 세계이종격투기대회 한국지역 최우수선수상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태권도, 합기도, 킥복싱, 유도 등 온갖 격투기를 합쳐 놓은 이종격투기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인파이팅 그 자체였다. 무조건 다가서는 것이다. 결코 주춤거리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9전 6승 1무 2패. 챔피언 벨트 두 개. 이는 3년 전 다이어트를 위해 킥복싱 체육관을 찾은 뒤 격투기의 매력에 빠져 선수로 전향해 얻은 성과다. 성실한 훈련과 단단한 근성으로 똘똘 뭉친 그는 세계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토록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는 걸까. 더군다나 취미도 아니고, 선수로 말이다.
“사람들은 힘들 때 무언가에 의지하잖아요. 종교 같은…. 저에게 격투기는 그런 의미예요.”
격투기를 시작하기 전, 그는 스물 남짓한 삶을 무료하게 지냈다고 한다. 학창시절 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학생일 뿐이었다. 그냥 그렇게, 너무나 조용히 살았다. 그다지 재미있는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운수회사에 취직해 사무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스트레스가 쌓여 체중만 늘었다.
“킥복싱이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도 혼자 격투기체육관에 들어서기가 힘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갔었지요. 친구들은 며칠만에 힘들어서 그만뒀는데, 저는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하다가 선수까지 하게 된 거예요.”
그래도 훈련은 힘들다. 생계를 이어가기도 쉽지 않다. 아직 정착 단계인 이종격투기 대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은행에서 청원경찰 근무를 한다.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근무하고, 곧바로 체육관에 와서 4시간 이상을 훈련하는 것이다.
“여성 청원경찰은 장점이 많아요. 아무래도 좀 더 친근하죠. 제가 이종격투기 챔피언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고객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더 친근하게 잘 해줘요(웃음).”
그래도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여성으로서 격렬하다 못해 잔혹하기까지 한 스포츠를 하는 것에 가족이나 친구들의 우려가 왜 없을까.
“처음에는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시합에 나가서 얼굴을 다쳐서 들어오니까 심하게 반대를 하셨지요. 지금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걸 아니까 소리없이 응원해주고 있지만…. 친구들은 그냥 신기하게 생각하죠(웃음). 그래도 격려를 많이 해주세요.”
회사와 체육관을 오가는 일상에서 그는 취미 생활을 할 수도 없고,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다.
가끔 체육관을 함께 다니는 언니들과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란다. 최근 <내 사랑 싸가지>를 봤다면서 수줍게 웃는 김현성 선수. 그러고 보니 그는 앞머리카락을 짧게 가지런히 내린 최신 유행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수줍은 미소와 최신 유행 헤어스타일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기 때문이리라.